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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나는 거듭거듭/박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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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중복이다 중복 세력이다 중복이라면 무조건 치를 떠는 사람들 때문에 골치다 중복의 가치를 알려고 하지 않고 중복이라면 짜증부터 내고 반대하는 사람들 하긴 그들이 무슨 죈가 나는 중복이 정확하게 거듭되는 것들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나는 골수 중복 세력이다 중복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 중복의 기미만 보여도 알러지 반응을 보이고 중복 세력 척결에 앞장서고 목소리를 높이고 또 나 같은 선명한 골수 중복 거듭됨을 신봉하는 중복 세력 입장에서 형편없는 중복 거듭됨에 대한 뚜렷한 비전도 믿음도 없는 어정쩡한 중복 한두 번의 단순한 반복에 만족하는 반복 세력에게 중복 딱지를 붙여 주고 중복으로 몰아붙이는 중복 몰이로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 그들이 무슨 죈가 나는 중복 세력으로서 선명한 중복을 구현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고 세상이 중복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정확한 겹침 선명한 아름다운 우아한 중복 거듭됨 나는 거듭거듭

 이 세상에 중복 아닌 것이 어디 있겠는가? 나도 물론 중복의 결과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중복되어 거듭되고 거듭되어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당신도 저 강아지도 고양이도 맨드라미 채송화도 중복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중복에 대해 내가 한마디만 더 해도 짜증부터 내려고 한다 그리고 나도 중복에 대해 시시콜콜 설명하는 것이 구차스럽다 보라 중복 중복들아 자신이 중복인 줄도 모르고 중복의 결과인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중복의 축복과 은혜를 알지 못하고 중복을 꺼리고 불편해하고 미워하고 중복을 단지 세상의 한 패거리 어떤 무리로만 단정하려는 무리들 그리고 자신들만 중복이라고 착각하는 무리들 자신들만 중복의 축복과 은혜 속에 있다고 으스대는 인간들 이리저리 꿰어 맞춘 중복들 입으로만 중복을 찬양하는 중복들 중복팔이들 중복 장사꾼들 나는 거듭거듭

[오후 한 詩]나는 거듭거듭/박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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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재밌어서 자꾸 읽게 되는 시다. 현재 한국 시단에서 이처럼 능글맞게 재미난 시를 쓰는 시인은 드문 편인데, 내가 아는 바로는, 그중에 박순원 시인이 최고다. 물론 재미있다고 해서 그 시가 곧장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시가 재미나다고 해서 일단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바와 매한가지로 잘못된 것이다. 어떤 시는 눈물 콧물을 쏙 빼놓지만 어떤 시는 깔깔 웃게 만든다. 그뿐이다. 그런데 이 시는 그 이상이다. "이 세상에 중복 아닌 것이 어디 있겠는가?" 깔깔 웃다가 죽비로 한 대 된통 맞은 느낌이다. 그건 그렇고, 이 시를 읽고 설마 심기가 불편하거나 화가 나거나 그런 분은 없겠죠? 그러면, 요즘 말로 진 건데.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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