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 문구업에 다 바쳐"…부부 희노애락 담겨
"그 시절 코찔찔이들 오십 넘어 찾아와"
물건 훔치는 애들…돈 없는데 장난감은 가지고 싶고 이해해


"전통과 역사가 있는 보성문구사" 장을 보고 가게로 돌아온 주인 할머니는 30분 전 주인 할아버지와 같은 말을 했다. 78세, 70세 노부부가 운영하는 '보성문구사'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문구점이다. 할아버지는 1968년 경신고등학교 앞에서 문구점을 시작해 옛 보성고등학교를 거쳐 현재의 혜화 초등학교 앞에서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


종로구 혜화동에 위치한 보성문구사. 간판은 할아버지가 직접 썼다.

종로구 혜화동에 위치한 보성문구사. 간판은 할아버지가 직접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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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말처럼 보성문구사에는 역사가 담겨 있다. 가게 안에는 추억의 물건들이 진열돼 있다. 90년대 학습 도구부터 70년대 교련복의 베레모, 각반, 요대까지 제대로 갖췄다.

특히 주변 학교들의 옛날 배지와 단추는 보성문구사의 자랑이다. 수집가들이 비싼 값을 매겨 사가기도 하고 해당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이 알아보고 들어오기도 한다. 할아버지는 "그 시절 코찔찔이들이 나이 오십 넘어 찾아온다"며 웃음 지었다.


어느덧 노부부의 자식들도 대학생 자녀를 둔 부모가 됐다. 문구점을 찾는 고객들은 손주보다도 훨씬 어린 셈이다. 그래서인지 부부는 고객들에게 한없이 다정하다. 고객들을 부르는 호칭은 "아기"다. 물건을 훔치는 아이들한테마저 인자하다. 할아버지는 "아기들이 돈은 없는데 장난감은 가지고 싶어 순간적으로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신중고, 동성중고, 보성중고의 옛날 배지와 단추들.

경신중고, 동성중고, 보성중고의 옛날 배지와 단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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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장사 비결 중 하나는 옷걸이에 있다. 문구점 천막에는 일자로 늘어트린 옷걸이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옷걸이에는 아이들의 주목을 끌만한 딱지와 뽑기 등이 걸려있다. 가게 앞을 지나는 아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기에 제격이다. 할아버지는 "외국인들도 사진을 많이 찍어간다"며 30년 된 비결을 자랑스레 풀어냈다.


부부는 주변 문구점이 하나둘 문 닫는 걸 보면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지난 2년 사이에만 전국의 문구점 3284곳이 사라졌다.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2014년 1만3496곳이던 문구점이 지난해에는 1만212곳으로 감소했다. 대형유통업체와 온라인 쇼핑몰의 급성장, 학생 수 감소 등이 그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2011년 '학습준비물 무상지원제도' 시행 이후 학교에서 준비물을 일괄구매하면서 문구점은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아이들이 옷걸이에 걸린 딱지를 보고 문구점 앞에 멈춰섰다.

아이들이 옷걸이에 걸린 딱지를 보고 문구점 앞에 멈춰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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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그 속에서 50년째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물으면 "문구점은 배움의 터전이고 문화사업"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문구점을 구멍가게로 여기지 않는 부부의 자부심이 돋보인다. 할아버지는 "요즘엔 컴퓨터로 준비물을 사고 노트 필기도 잘 안한다"면서도 물건을 계속 들여온다.


올해 초 할아버지는 '문구점 매매'가 쓰인 종이를 다시 붙였다.

올해 초 할아버지는 '문구점 매매'가 쓰인 종이를 다시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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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할아버지는 "청춘을 문구업에 다 바쳤다"며 "이젠 그만둘 때가 됐다"고 밝혔다. 할머니 역시 "기운이 없어 더 이상 못한다"고 토로했다.


가게 앞에 '문구점 급매'라는 종이를 붙인 지도 올해로 5년째다. 두세 사람이 가게를 인수하고자 방문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할 만한 사람이 못돼서 안줬다"며 "문구점 아닌 다른 가게 할 사람에겐 안 준다"고 말했다. 부부는 이미 오래 전에 장사를 접겠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


디지털뉴스본부 김경은 기자 sil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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