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16兆 휴미라, 5兆 R&D의 힘"…연구개발 통 큰 투자가 정답
바이오산업, 미래 먹거리로 뜬다 <하>
후발 강국 벨기에 정부 R&D 투자, 민간의 40% 육박
韓 정부, 민간 투자의 8% 불과…두 자릿수로 늘리고
소관 부처도 제각각…통합 컨트롤타워 만들어야
바이오의약품 시장이 국내 1위 수출품목인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2배를 넘어섰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바이오의약품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자동차, 조선, 철강 등 그동안 한국경제를 이끌었던 주력 중후장대 산업이 주춤하는 가운데, 바이오산업이 국내 경기를 회복할 구원투수로서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전 세계 대부분 국가가 고령화 문제를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상황에서 바이오의약품을 포함한 헬스케어 산업은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3회에 걸쳐 바이오의약품 산업의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 등을 짚어본다.
[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2002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으로 세상의 빛을 본 바이오의약품 '휴미라'(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 미국 바이오ㆍ제약사 '애브비'가 개발한 이 약은 2015년 한 해 동안 세계적으로 144억달러(약 16조4000억원) 어치가 팔려나갔다. 그 해 우리나라 전체 제약ㆍ바이오시장(약 18조원)과 얼추 비슷한 규모다. 휴미라는 첫 출시된 이후 지난 15년간 무려 140조원(추정치)이 넘는 금액을 벌어들였다. 기업 입장에서 회사를 먹여 살리는 '초대박 상품'인 셈이다. 이 외에도 조(兆) 단위의 매출을 자랑하는 바이오의약품은 엔브렐, 레미케이드, 란투스, 아바스틴, 허셉틴, 리툭산, 뉴라스타 등 부지기수다. 휴미라를 포함해 이들 바이오의약품 8개가 한 해(2015년) 올린 매출액은 635억달러(약 72조4000억원)에 달한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이 같은 대박 제품을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과실을 얻기 위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다. 인체에 안전한지, 효능이 어느 정도인지 등 최소 10년에서 길게는 20년 이상 걸린다. 연구비 역시 천문학적이다. 적게는 수천억 원에서 많게는 수조 원에 이른다. 휴미라를 세상에 내놓은 애브비는 2015년 기준 매출액의 18.7%인 42억8500만달러(약 4조8800억원)를 연구개발(R&D)에 쏟아부었다. 그 해 전 세계 제약사 중 R&D 투자를 가장 많이 한 스위스계 '로슈'는 무려 10조6300억원을 투자했다.
같은 기간 국내 10대 제약업체의 R&D 총액은 6720억원 정도다. 로슈 한 곳의 6% 남짓에 불과한 수치다. 물론 블록버스터 상품이 대형 제약사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매출액 1조6000억원 규모의 일본 중견기업 오노제약은 매출액의 30%를 R&D에 꾸준히 투자해 블록버스터 바이오의약품 '옵디보(면역항암제)'를 개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업계에선 옵디보가 5년 뒤 휴미라의 매출을 뛰어넘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투자 규모에 비해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한 우리나라도 희망은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발간한 기술 수준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바이오 기술은 세계 1위 미국의 77% 수준이다. 미국ㆍ유럽연합(EU)ㆍ일본에 이은 세계 4위다. 다만 바이오 기업의 60%가 벤처기업일 정도로 기업 규모가 작아 대규모 투자가 힘들다는 것은 약점이다. 전문가들이 바이오산업을 국가의 신성장 동력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15년 주요 국가의 신약개발 연구개발비 지원 현황을 살펴보면 미국의 경우 정부가 앞장서 301억달러(약 34조원)가 넘는 금액을 R&D에 지원했다. 이는 민간 투자의 37%에 해당하는 규모다. 최근 제약ㆍ바이오 강국으로 떠오른 벨기에는 정부의 R&D 투자 규모가 민간 투자의 40%에 육박한다. 15억유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조8300억원이 넘는 액수다. 이웃나라 일본도 민간 R&D 투자 1만4410억엔(약 14조7300억원) 중 정부 투자가 19%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이들 국가에 비하면 한참 뒤처진다. 2014년 기준 민간 R&D 투자가 1조2000억원, 이 중 정부 투자는 1000억원에 그쳤다. 정부투자율이 한 자릿수인 8%에 머문 것이다. 엄승인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의약품정책실장은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을 연상시킬 정도로 국내 제약사의 연구개발비는 글로벌 제약사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지만 매년 그 규모를 늘려가며 신약개발에 한 걸음씩 다가서고 있다"며 "어느 산업보다 꾸준한 투자가 이뤄져야 바이오ㆍ제약 산업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바이오ㆍ제약시장은 치열한 전쟁터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한국엔 정책을 총괄하면서 육성하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것도 아쉬운 점 중 하나다. 같은 신약 물질도 연구ㆍ임상ㆍ제품화 단계별로 소관 부처가 다르다. 의료기술 개발과 뇌과학 원천기술 사업은 미래창조과학부, 생물화학과 바이오 의료기기는 산업통상자원부, 질병관리연구는 보건복지부 등이 각각 나눠서 맡고 있다. 바이오ㆍ제약 강국인 미국ㆍ일본 등이 하나의 부처에서 모든 역량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아울러 정부의 선제적 규제 개혁도 절실하다. 10여년에 걸쳐 임상시험을 마무리하고 나면 정부에서 허가받는 데만 최소 1년 이상이 걸린다. 글로벌을 향해 갈길 바쁜 기업이 발목 잡힌 셈이다. 묵현상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장은 "바이오산업 지원과 감독 체계가 부처별로 쪼개져 있다 보니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라며 "새 정부가 바이오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을 의지가 있다면 정책 통로를 정비하고 규제 개혁에 앞장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