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만

토마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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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토마스 만(Thomas Mann)을 만난다. <마의 산(Der Zauberberg)>을 읽고 그의 글에 빠져들거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Der Tod in Venedig)>을 읽고 매혹된다. <요셉과 그의 형제들 (Joseph und seine Brueder)>은 어떤가. 그러나 <바이마르의 로테(Lotte in Weimar)>를 읽은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국내에 번역된 사례가 없다.


이번에 ‘창비’에서 ‘창비세계문학’ 시리즈의 쉰다섯 번째 책으로 내놓았는데 임홍배가 옮겼다. 제목이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이다. 이 출판사에서는 기존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제목을 자주 선보인다. 시리즈 54번, 나쓰메 소세키가 쓴 소설의 제목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아니고 <이 몸은 고양이야>다. 그 제목은 일본어 ‘와가하이와 네코데아루(吾輩は猫である)’를 어감에 맞게 번역했다고 하니 그런 줄 알면 그만이다. 하지만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는 언어 감각의 문제가 아니고 사실(史實 또는 事實)의 문제다. 눈치가 빠르다면 우리나라에 처음 번역돼 나온 토마스 만의 책이 어떤 내용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괴테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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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1775년 11월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국의 군주 카를 아우구스트(Karl August)의 초청을 받아 바이마르에 갔다. 거기서 유럽 지성 세계의 슈퍼스타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정무를 맡아 일하는 동안 심신의 피로를 느낀 그는 이탈리아로 여행(1786년-1788년)을 떠난다. 이 여행은 훗날 <이탈리아 기행>으로 정리되었다. 이탈리아에서 남국의 태양과 에너지를 충전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고미술 작품들을 접하면서 자극받은 그의 내면은 질풍노도(Sturm und Drang)의 시기를 지나쳐 독일 고전주의 문학의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괴테는 여러 여성을 사랑한 정열적인 남자였다. 그의 생애에 이름이 샤를로테(로테는 애칭)인 여성 두 명이 등장한다. 하나는 샤를로테 부프(Charlotte Buff), 또 하나는 샤를로테 폰 슈타인(Charlotte von Stein)이다. 아마도 우리 머릿속에는 괴테의 두 로테가 뒤죽박죽돼 있을 것이다.

괴테는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법률실습을 위해 1772년 베츨라어 고등법원으로 갔다가 첫 로테를 만났다. 그녀의 나이는 열여섯, 요한 크리스티안 케스트너(Johann Christian Kestner)란 사나이와 약혼한 사이였다. 괴테는 그녀를 뜨겁게 사랑했다. 그러나 로테는 괴테에게 “우정 이상은 바라지 말라”고 했다. 괴테가 고향인 프랑크푸르트(암 마인)로 돌아가 반년쯤 지났을 때, 베슬라에서 예루살렘이란 친구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불행하게도 친구의 아내를 사랑한 예루살렘은 하필 케스트너에게서 빌린 총으로 목숨을 끊었다. 이 두 가지 경험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형상화되었다.


샤를로테 폰 슈타인

샤를로테 폰 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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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로테는 괴테가 ‘지적 차원’에서 만난 최초의 여성이다. 그녀가 괴테의 전 생애를 지배하는 상징이자 잠재의식임을 1500통이 넘는 편지가 말해준다. 그녀는 괴테의 삶에 등불 같은 존재였으나 예절과 관습을 존중했고, 괴테에게 누이 이상의 존재가 되지는 않으려 했다. 단막극 〈남매(Die Geschwister)〉와 서정시 〈달에게(An den Mond)〉, 〈잔(Der Becher)〉, 〈사냥꾼의 저녁노래(Jaegers Abendlied〉, 〈바다여행(Seefahrt)〉 등은 모두 샤를로테 폰 슈타인과 관계가 있다. 괴테의 시(Warum gabst du uns die tiefen Blicke?) 한 대목은 지금 읽어도 가슴 깊은 곳을 울린다.


(전략)
그대는 내 존재 전부를 알았습니다.
어떻게 가장 순수한 현이 울리는지도 엿보았습니다.
눈길 하나로 나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눈이 간파하기 어려운 시선으로.
뜨거운 피에다 절제를 방울방울 떨어뜨려 주었고
길 잃은 거친 걸음을 바로잡아 주었습니다.
부서진 가슴은
그대 천사의 품 안에서 다시 안식을 취했습니다.
마술처럼 가볍게 그를 비끄러매어
나에게 많은 날을 요술로 꺼내 보여주었습니다.
(중략)
그리고 그 모든 것에 관한 기억 하나만이
흔들리는 마음을 아직도 맴돌고 있습니다.
오랜 진실이 마음속에서 영원히 변함없음을 느낍니다.
하여 새로운 상태는 그에게 고통이 됩니다.
하여 우리는 서로에게, 혼을 절반만 불어 넣은 사람들 같습니다.
가장 밝은 대낮에도 우리 주위는 어슴푸레 가물거립니다.
(후략)


샤를로테 케스트너(부프)

샤를로테 케스트너(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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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년 가을, 노부인이 바이마르를 방문한다. 동생 부부를 만나기 위해서라고 했다. 딸과 하녀가 동행했다. 노부인은 호텔 숙박부에 ‘샤를로테 케스트너, 결혼 전 성 부프’라고 적는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그 ‘로테’가 왔다는 소식이 온 도시에 삽시간에 퍼졌다. 로테를 만나려는 방문객이 줄을 잇는다. 로테는 괴테와 관련이 있는 다양한 인사들을 차례로 만나 ‘예술의 사제’이며 ‘정신적인 존재’로 추앙받는 괴테에 대해 대화한다.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는 바로 200년 전의 어느 재회에서 소재를 얻어 쓴 책이다. 당대의 베스트셀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낳은 젊은 날의 인연으로부터 44년이 지난 뒤 괴테와 로테가 재회한 것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데 비해 특별한 이야기를 남기지 않았다.


토마스 만은 괴테와 로테의 재회를 심상하게 보아 넘기지 않았다. 소설 속에서 로테는 괴테를 새롭게 조명하며 그 거대한 존재를 환기하는 주체가 된다. 토마스 만은 인간과 생에 대한 철학적 통찰을 심도 깊게 전개한 작가로, 독일 문학의 전통을 계승해 세계 문학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예술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이 책에서 괴테를 통해 예술과 예술가, 인간의 정신과 삶 같은 묵직한 주제들을 풀어낸다. 괴테의 작품과 관련 사료 들을 촘촘하게 엮어 넣으며 괴테를 탐구하는 동시에 자신의 문학적 주제들을 성찰하고 전진시킨다. 따라서 이 책을 번역하려면 괴테와 토마스 만이라는 문학사의 두 거인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다. 아마도 그 어려움이 지나치게 커서 그 동안 번역서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출판사의 책 소개는 참으로 적절해서 더 잘 쓰기 어렵다.


[허진석의 책과 저자] 토마스 만의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 원본보기 아이콘
“이 작품은 괴테에게 사랑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로테를 중심으로 이어진다. 숱한 편력을 거친 노년의 괴테는 이제 ‘정신적으로 고양된 삶이기에 더 풍성한 사랑’을 한다. 이는 괴테의 사랑이 언제나 창작의 원체험으로서 한 개인이 아닌 더 높은 세계로 향하는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 누구보다 더 ‘위대함의 제물’이었던 로테를 통해 괴테의 삶과 예술을 여실하게 돌아볼 수도 있게 된다. 괴테의 세계를 관통하는 ‘구원의 여성성’이 이 소설에서는 로테를 통해 구현되며, 신의 자리에서 내려온 괴테의 모습을 드러내는 계기를 만든다. 그리고 로테는 ‘제물이자 제물을 바치는 사람’인 괴테와 마침내 화해하며 ‘수많은 이름을 가졌으나 결국 하나의 유일자’로서 자신의 사랑을 확인한다.”


<토마스 만 지음/임홍배 옮김/창비/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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