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기요틴
미셸 푸코는 1975년에 '감시와 처벌(Surveiller et punir)'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중세에서 현대에 이르는 감옥의 역사를 통해 권력을 파헤친다. 그럼으로써 권력이 어떻게 개인의 신체를 조종하려 하는지 설명한다.
책은 1757년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 시역죄로 체포된 로베르 프랑수아 다미앵을 처형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읽기 거북하다. 죄인의 몸을 베고, 끓는 기름을 붓고, 말(馬) 네 마리를 부려 거열(車裂)한 다음 시신을 불태우고…. 사형집행인이 판결문대로 집행하고 나니 늦은 밤이 되었다고 한다.
그 시대의 신체형은 이토록 가혹했다. 여기에는 정치적 의미가 있다. 상처받은 권력을 회복시키는 의식(儀式). 신체형은 권력의 본질적 우월성을 과시한다. 그 내용이 범죄자의 신체에 대한 흉폭한 공격으로 표현된다. 푸코는 "신체형이란 공포 본위의 정치학으로 권력을 강화하는 작용을 한다"고 썼다.
하지만 잔혹한 처형엔 부작용이 따른다. 사형수는 억울함과 사회에 대한 불만을 대중에 토로했다. 대중은 그를 동정하거나 주장에 공감했다. 대중의 이러한 경험은 폭동과 혁명에 에너지로 작용할 수 있었다. 신체에 대한 처벌이 한계를 드러낼 때 감옥이 등장한다. 감옥의 목적은 격리와 개조(개심)다. 개조의 목적은 권력에 이익이 되는 존재로 바꾸는 데 있다. 푸코가 보기에 "감옥의 작용 방식은 완전한 교육의 강제"다.
프랑스 혁명이 시작될 무렵, 의사 조제프 기요틴이 처형 제도의 개혁을 주장한다. 그의 제안 중에는 야만적인 처형 방식을 대체할 수단도 포함됐다. 국민공회는 기요틴의 제안을 수용해 위원회를 소집한다. 우두머리는 앙투안 루이였다. 위원회가 채택한 '단두기(斷頭機)'는 결코 새로운 장치가 아니었다. 중세부터 사용된 목 베는 기계의 칼날이 지면과 수평을 이룬 데 비해 새 기계는 삼각날을 채용한 점이 달랐다.
단두기는 혁명의 극단주의를 상징했다. 루이 16세는 1793년 1월 21일에 처형되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혁명가 조르주 자크 당통,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도 단두기를 피하지 못했다. 기요틴이 기록했다. "기계장치는 천둥처럼 떨어진다. 목이 날아가고 피가 튀면 사람이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은 것이다."
떨어진 목은 다시 붙지 않는다. 인간의 뇌는 목을 베는 순간 즉사한다. 물론 목 잘려 죽은 사람은 많아도 죽어본 사람은 없으니 단언하기 어렵다. 오르한 파묵은 <내 이름은 빨강>에서 하산이 올리브를 목 베는 장면을 이렇게 썼다. "나의 머리가 잘려나갔다는 것을, 가련한 내 몸이 (중략) 바닥으로 쓰러지는 것을 보고 알았다.(중략) 풍경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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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목을 베는 행위야말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결정이다. 혁명은 썩은 권력을 절제함으로써 성공을 기약한다. 500년쯤 뒤에 후손들은 우리 시대의 혁명에 대해 배울 것이다. 우리의 혁명은 불의한 권력을 단두기로 보낸 적이 없다. 친일도 부역도 청산되지 않았다. 모순과 불의가 재생산되는 근원이 여기 있다. 참혹한 처형이나 기요틴의 시대는 지났거니와, 감옥이라도 제 구실을 하면 좋으련만.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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