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반도에 어린 사슴을 닮은 섬이 있다. 소록도(小鹿島)다. 송림과 기암이 어우러져 다도해 절경을 볼 수 있는 소록도는 과거 한센인들의 애환이 깃든 곳이다. 고흥 8경 중 2경에 들지만 편히 섬을 즐길 여유를 갖기란 쉽지 않다. 어디건 슬픔과 한숨이 배어있지 않은 곳은 없기 때문이다.
소록도에 한센인 병원이 들어선 것은 1916년이었다. 당시 한센병은 전염병으로 인식돼 천형(天刑)으로 여겼다. 일제에 의해 강제 수용된 환자들은 가족과 생이별을 했고 지독한 오해와 편견에 시달려야 했다. 불법감금은 예사였고 골수를 빼고 생식기를 자르는 만행도 저질러졌다. 지금도 남아 있는 소록도갱생원 검시실(등록문화재 제66호)과 감금실(등록문화재 제67호)은 일제 강점기에 인권 유린이 자행되었던 현장이다. 검시실에는 수술대와 세척 시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광복 후 천사처럼 환자들을 돌본 헌신적인 사랑도 배어 있다. 1960년대 초 병원장으로 부임해 '오마도 간척사업'을 주도한 조창원씨, 환자들의 손ㆍ발톱까지도 손수 깎아주었던 신정식씨 등이 그들이다.
푸른 눈의 천사들도 있었다. 1962년 외국인 수녀가 소록도를 찾아왔다. 오스트리아에서 파견된 마리안느 스퇴거(83ㆍMarianne Stger)와 마가렛 피사렉(82ㆍMargaritha pissarek) 수녀였다. 당시 한센인은 '하늘도 버린 존재'로 여겼다. 한국 의사와 간호사들조차 환자들과 접촉을 피하던 때였다. 두 수녀는 달랐다. 연고도 없는 소록도에서 환자들의 상처와 아픔을 보살피며 사랑을 실천했다. 맨손으로 환부 피고름을 짜내고 진물을 닦아내며 상처를 치료했다. 환자들과 얘기할 땐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기도 하고, 모두가 기피할 때 환자를 집으로 초대해 함께 밥을 먹곤 했다.
소록도 어르신들의 생일이 되면 손수 구운 빵과 함께 생일을 축하했다. '당신의 탄생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라는 의미였다. 세상과 등진 채 살아가는 이들에게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는 의사이자 엄마였다. 소록도 환자들은 '할매 천사'라고 불렀다.
그들이 남긴 건 사랑뿐만이 아니었다. 오스트리아 부인회 도움으로 영아원과 결핵병동, 정신과 병동, 목욕탕 건물을 지었다. 치료에 필요한 의약품과 의료기기도 받았다. 그럼에도 자신들 삶은 한없이 청빈했다. 43년 간 보수를 단 한 푼도 받지 않고 봉사와 사랑을 실천했다.
2005년 두 사람은 '그곳에서 참 행복했습니다' 라는 편지 한 통만 남기고 모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1년만인 지난해 마리안느 수녀가 소록도로 돌아왔다. 환자들은 할매 천사를 울음으로 환영했다.
지난 주 고흥 출장길에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애환과 슬픔을 간직한 소록도와 두 수녀의 지고지순한 삶을 다룬 영화가 내달 개봉을 확정했다는 이야기다.
윤세영 감독이 연출한 휴먼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두 수녀가 소록도에서 겪었던 43년간의 삶을 기록영상과 실제 촬영을 통해 관객과 만난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서툰 한국말로 전하는 사랑과 희망 메시지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 진한 진심을 전한다. 내레이션은 이해인 수녀가 직접 맡아 두 사람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더욱 의미 있게 전달한다.
모쪼록 '수녀'라는 호칭보다 친근한 '할매'로 불리기를 원했던 두 수녀의 사랑 가득한 삶을 되새겨보는 소중한 기회가 되길 바래본다. 사랑은 전염병이라고 했다.
조용준 사진부장ㆍ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아시아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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