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막힌 중도금대출]신규 분양단지 70%가 '중도금 몸살'(종합)
毒이 된 분양호황, 꽉막힌 집단대출
은행권 가계부채 관리 영향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 배경환 기자]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었던 부동산 경기 호황이 독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막바지 호황기였던 10월 전후 분양한 신규 아파트의 중도금 1차 납부시기가 도래했지만 아직 10가구 중 7가구가 대출은행을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해줄 은행을 구하지 못한 건설사들이 1차 중도금 납부일을 1~2개월씩 연기하는 초유의 일도 빈번해지고 있다.
13일 아시아경제가 지난해 10월 전후로 분양한 단지 32곳의 중도금 대출은행 계약현황을 파악한 결과 전국 32개 단지 가운데 20곳이 아직 대출은행을 찾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가구수로 따지면 3만6528가구 가운데 2만6637가구로, 72.9%에 달하는 물량이다. 중도금 대출은행을 결정한 아파트가 10가구 중 3가구도 채 안 되는 셈이다.
중도금이란 새 아파트 분양 시 초기 계약금 납부 후 5~6개월 가량 지난 시점에 내는 비용이다. 통상 아파트값의 60% 가량을 몇 차례에 걸쳐 나눠 내는데, 시행사나 건설사가 대출은행을 알선해 아파트 계약자에게 집단대출을 일으키는 게 일반적이다.
지난해 10월 분양한 아파트의 경우 이달부터 순차적으로 1차 납부시기가 도래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은행권이 가계부채 관리 차원에서 대출옥죄기에 나서면서 분양단지마다 중도금 대출은행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지난해 10월 경기도 광주에서 분양한 힐스테이트태전2차 아파트는 은행과 협의를 마치지 못해 오는 15일이던 1차 납부시기를 연기했다.
◆전국 32곳중 20곳 대출은행 못찾아..납부일 1~2개월씩 연기하기도 = 경기도 화성에 공급한 동탄신도시 더샵레이크에듀타운도 1차 중도금 납부일을 한달 후로 미뤘으며 오는 25일로 예정됐던 강릉 송정한신더휴 역시 미루는 쪽을 검토중이다.
다음달 15일 중도금을 내야하는 서울 강동구 고덕 그라시움의 경우 조합원 분양 물량만 2금융권과 힘들게 계약했다. 조합원들은 1금융에서 막힌 중도금 대출을 그나마 2금융에서 풀었지만 일반분양자들은 여전히 대출은행을 찾지 못했다. 분양팀 관계자는 "이달 중 최종적으로 결정해 계약자들에게 안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음 달이나 4, 5월께로 1차 납부일을 예정했던 단지들도 대출은행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1500여가구를 분양한 수도권의 한 대규모 단지의 분양 관계자는 "금리수준이 높은 건 차치하고 협의중인 은행 대부분이 대출 자체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요즘 중도금 대출이 어렵다는 얘기가 많은데 실감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은행권이 신규 분양단지의 집단대출 영업에 적극 나섰던 점을 감안하면 최근의 대출기피 현상은 180도 달라진 풍경이다. 은행들은 건설사들이 분양물량을 쏟아냈던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경쟁적으로 낮은 금리를 제시하며 영업경쟁을 벌였다. 이에 일부 아파트의 경우 2% 초반대로 중도금대출 계약을 맺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대출처를 찾은 아파트의 금리는 대부분 3~4%대를 보이고 있고 5%대를 넘는 곳도 있다. 2금융과 대출계약을 맺은 아파트의 금리는 이보다 더 높다.
대형 건설사 한 관계자는 "은행들이 지난해 연말엔 대출한도가 차 여력이 없다고 했는데, 새해에도 여전히 비슷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면서 "지방 소규모 단지는 사업성이 낮다는 이유로, 수도권 대형 사업장에 대해선 대출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난색을 보여 분양계약자로부터 민원이 늘어나는 등 사업리스크가 커졌다"고 말했다.
◆"비올 때 우산 뺏는다"..속타는 수분양자·주택사업자 = 정부는 지난해 가계부채 관리방안의 후속조치로 11ㆍ3대책을 통해 중도금 대출 보증 발급 요건을 강화했다. 단순 소득 수준은 물론 관련된 증빙서류까지 요구하는 방식이다. 단기 투자자들로 인해 청약 시장이 과열되는 것을 잡으려는 조치였다.
하지만 2월 이후 중도금 1차 납부가 시작되는 지난해 10월 분양 사업장을 대상으로 심각한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당시 분양한 전국 3만7000여가구 중 70%가 넘는 2만6000가구가 중도금 대출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형 건설사도 피하지 못했다. 당초 오는 15일이 중도금 1차 납부였던 평택 일대 A 사업장은 납부일을 최대 두 달까지 미뤘다. 80%대의 분양률을 기록했지만 은행이 돌연 "기존과 같은 기준으로 대출해 줄 수 없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어서다. 실제 지난해 말 3%대를 제시했던 중도금 대출금리는 4%대 높아졌고, 그마저도 중도금 전액을 대출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방에 자리잡은 중소형 건설사들은 더 열악하다. 은행들은 90%의 계약률을 넘기 사업장도 지방이라는 이유로 집단대출을 해주지 않고 있다. 고금리는 물론 기타 예금까지 요구하는 이른바 '꺾기' 관행도 심각해지는 수준이다. 지방 소재 한 건설사 임원은 "건설사들이 관리해야 할 분양 수익금 통장을 내놔야 대출 승인을 해주겠다는 등의 과도한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며 "대형사에 비해 신뢰도가 낮은 우리로서는 결국 2금융권을 찾거나 계약자들에게 개인신용대출을 알선해주는 방법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은행을 찾지 못해 사업이 취소될 위기에 처했던 곳도 있다. 경기권 B 사업장의 경우 지난해 시중은행과 협약을 맺었지만 금리 조정, 조건 강화 등의 이유로 대출 협약이 깨져 최근에서야 어렵게 2금융권에 손을 빌렸다. 기존 은행과 거래가 틀어지는 과정에서의 금융 부담, 조합원들의 반발 등으로 사업이 좌초될 위기까지 갔었다는 게 이곳 사업장 관계자의 설명이다.
◆중도금 대란…서민 피해자 늘어나나= 문제는 중도금 대출 규제가 장기화될 경우 피해 사업장이 더 늘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특히 집단대출 거부 사례가 빈번한 지방의 피해가 막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하반기 전국에 분양한 19만여가구 중 지방 물량은 7만여가구에 육박한다. 무엇보다 건설사는 미분양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대출 부담에 계약 포기 물량이 늘어날 경우 이는 고스란히 미분양으로 잡히기 때문이다.
기존 계약자들의 피해도 막심하다. 당첨자 대부분이 은행 집단 대출을 통해 중도금을 납부하고 있는 상황이라 대출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자칫 계약 포기 사태를 나을 수 있다. 이 경우 설상가상 계약자들은 위약금도 물어야 한다.
시장에서는 중도금 대출난에 이어 향후 잔금 만기가 시작될 경우 문제는 더 악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까지는 집단대출 중 잔금대출이 거치기간 5년까지는 원금을 상환하지 않고 이자만 내는 구조였지만 올해부터는 아파트 입주 때부터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아야 한다.
한 건설사 임원은 "정부의 과도한 금융규제, 금융권의 무리한 대출심사가 서민 피해자를 양산할 것"이라며 "결국 전국 사업장에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보증을 선 금융권 역시 손해를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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