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반대 무릅쓴 '메모리 직접 개발' 결단, 세계 최고 반도체 초석
-삼성전자·SK하이닉스 시가총액 1·2위, 반도체 위상 증명
-대한민국 메모리 반도체 신화…"가장 치열한 전쟁에서 쟁취한 산물"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반도체 산업을 우리 민족 특유의 강인한 정신력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추진하고자 한다."

고(故)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에게 1983년 2월은 고뇌의 시간이었다. 일본 도쿄에서 사업구상을 하던 그는 밤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가 내린 판단은 당시 재계의 반대를 무릅쓴 결론이었다. 이른바 '2·8 동경선언'으로 불린 바로 그 사건이다.


1985년 고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이 방진복을 입고 기흥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1985년 고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이 방진복을 입고 기흥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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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보국', 삼성의 집념="반도체 사업은 시기상조이며 확률적으로 이기기가 거의 불가능한 도박과 같다." "반도체 사업은 3년 안에 실패할 것이다." 재계의 반대는 무리가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반도체 사업은 인구 1억 이상, 국민총생산(GNP) 1만 달러 이상인 국가가 감당할 사업으로 인식됐다.

당시 재계와 언론의 우려를 반영해 반도체 사업 구상을 접었다면 대한민국 '반도체 신화'는 남의 나라 얘기로 머물렀을지 모른다. 이병철 선대 회장과 삼성 경영진의 생각은 달랐다.


"국가적 과제는 '산업의 쌀'이며 21세기를 개척할 산업혁신의 핵인 반도체를 개발하는 것이다." 삼성의 미래를 책임지는 것을 넘어 국가의 먹거리, 그 토대를 쌓겠다는 도전은 메모리 반도체 직접개발이라는 과감한 결단으로 이어졌다.


앞서 삼성은 1974년 12월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외주 부품을 생산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당시 반도체 강국이었던 미국과 일본은 기술보안에 철저했고, 한국은 부러운 눈길로 바라볼 뿐이었다. 메모리 반도체 직접 개발은 당시 꿈꾸기 어려운 도전이었다. 삼성은 1983년 3월 반도체 사업 추진 구상을 담은 삼성 선언문을 발표하며 도전장을 내밀었다.


삼성이 꿈꿨던 '사업보국(事業報國)'은 허언이 아니었다. 1983년 12월1일 국내 최초로 64K D램 생산에 성공했고, 10년 이상 차이가 나던 미국·일본과의 기술 격차를 4년으로 좁혔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일본 경험이 많은 내가 거의 매주 일본으로 가서 반도체 기술자를 만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배우려 노력했다"고 말한 바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현장<자료사진>

삼성전자 반도체 현장<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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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K하이닉스, 자극의 선순환='일에 착수하면 물고 늘어져라.' '지나칠 정도로 정성을 다하라.' 삼성전자 직원들은 반도체인의 신조를 되뇌며 하루를 열어갔다.


신화의 토대는 수많은 이들의 땀과 노력이 바탕이었다. 삼성전자는 1992년 64M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고, 메모리 강국인 일본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1994년 256M D램, 1996년 1Gb D램 등을 세계 최초로 내놓으며 반도체 1등 대한민국의 초석을 놓았다.


삼성전자는 D램 반도체 시장 점유율 부동의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현재 삼성전자 점유율은 50.2%에 이른다. 흥미로운 점은 SK하이닉스가 24.8%로 2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뚜렷한 경쟁자가 없는 상태로 독주를 이어갔다면 발전의 속도는 더뎠을지 모른다"면서 "그런 점에서 SK하이닉스의 선전은 서로에게 자극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종합반도체 시장에서 미국의 인텔이 삼성의 강력한 경쟁자라면 SK하이닉스는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을 긴장하게 하는 대상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2011년 하이닉스 인수 결정은 삼성의 메모리 직접 개발 당시와 유사점이 있다. 하이닉스 인수 당시에도 투자 리스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팽배했다.


하지만 최 회장은 반도체 사업을 SK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축의 하나로 판단했다. 그의 선택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결실로 이어졌다. SK하이닉스는 SK 주력 계열사가 유가 변화 등으로 고전할 때 그룹 전체의 영업이익 버팀목 역할을 해주는 '캐시카우'로서의 위상을 드높였다.


▲SK하이닉스 이천 캠퍼스 전경.(제공=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이천 캠퍼스 전경.(제공=SK하이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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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SK하이닉스, 실적 신기록 행진=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 매출 5조3577억원, 영업이익 1조5361억원을 기록했다. 분기별 매출액으로는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훈풍을 타고 기록적인 결과물을 이뤄냈다.


반도체 업계의 맏형 삼성전자가 일궈낸 결과물은 상상 그 이상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매출 53조3300억원, 영업이익 9조2200억원을 달성했다.


갤럭시노트7 사태를 경험하면서도 영업이익 9조원대를 달성한 배경에는 4조9500억원에 이르는 반도체 부문의 성과가 바탕이 됐다. 반도체 부문은 분기별 역대 최대 기록을 1조원 이상 초과하며 영업이익 신기록을 일궜다.


반도체는 한국 수출 1위 산업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한국 산업 전반의 수출한파 상황에서도 72조원이 넘는 수출(매출액)을 기록했다. 산업연구원은 올해 한국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율은 13.0%로 주요 산업 중 1위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도체 산업의 위상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시가총액 1위와 2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8일 현재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270조원에 이르고, SK하이닉스는 38조원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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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도전, 한국의 수성=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질주하고 있지만, 안심할 수는 없는 분위기다.


특히 반도체 후발 주자인 중국이 앞으로 10년간 1조 위안(약 170조원) 투자계획을 밝히면서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소비국인 중국은 앞으로 자급률을 20%에서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미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까지 한국을 위협하는 변수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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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지난해 집행한 25조5000억원의 시설투자액 중 13조2000억원을 반도체에 집중할 정도로 중장기 성장 동력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SK하이닉스도 LG실트론 인수에 이어 도시바 반도체 사업 지분 참여 경쟁에 뛰어드는 등 그룹 차원에서 힘을 싣고 있다.


이와 관련 박영준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발전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 메모리의 성공은 기술 선진국이 버리는 산업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가장 치열한 전쟁에서 쟁취한 선물이다. 핵심은 대규모 투자를 적시한 경영판단과 우수한 인력이 밤낮없이 노력한 결과이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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