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저녁 동네 식당에서도 비슷한 광경을 목도했다. TV '속보'에 정신이 팔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문득 옆 테이블 대화에 솔깃해졌다. 초등학생 아이가 TV에 시선을 꽂은 채 이렇게 물었다. "엄마, 퇴진이 뭐야?"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엄마가 아이 숟가락에 반찬을 얹어주면서 대답을 시리즈로 쏟아냈다. 큰 잘못을 저질러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라며 1절, 그 잘못 때문에 국민들이 화가 났다며 2절, 화가 난 국민들이 광화문에서 촛불 시위를 한다며 3절. 옆에 있던 아이 아빠가 거들었다. "우리 다음주에 광화문에 갈까?"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믿거나 말거나, 또 다른 쾌거가 있다. '옛날 헬-조선에 닭씨 성을 가진 공주가 살았는데 닭과 비슷한 지력을 가졌다'로 시작되는 연세대생의 <공주전>은 고통과 분노를 넘어 상실감과 허탈감에 처했을 때 비로소 예술의 정수(精髓)에 다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근혜가결국 해내시어타 나라골이참 잘도라간다 이정도일준 예상모택다…'는 고려대생의 <박공주헌정시>는 신랄함의 극치를 뽐내다못해 우리를 발작하게 만든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풍자의 대가'인 다리오 포도 울고 갈 학생들의 걸작을 그분이 봤을리 없지만, 혹 봤더라도 그 특유의 말투로 '그, 그러니까, 그렇게 해서...그'라는 '소리'만 겨우 내뱉었을 것이다.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저 소리를 해독하면 '지금의 수난과 고통은 학생들의 창작력을 북돋아 훗날 노벨문학상 수상의 토양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기도 안차는 결과물이 나온다.
'빽' 없고 힘 없는 서민들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곤 이 악물고 견디며 버티는 인내심 뿐이다. "재능보다 훈련, 열정, 행운이 우선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내심이다"는 제임스 볼드윈의 말처럼. "불굴의 용기와 인내심을 갖춘 인간은 어떤 위기가 닥쳐도 견뎌낼 수 있다"는 부처의 가르침처럼. 권력은 10년을 못 가고(權不十年), 화려한 꽃도 십일을 넘기지 못한다(花無十日紅). 결국은 국민이 이긴다.
이정일 산업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