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임훈구의 愛드립 3] "난 루저야, 날 죽여버리지 그래"…이 시대 최고의 루저가 온다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공연중인 벡 (2013)

공연중인 벡 (2013)

AD
원본보기 아이콘

2030 후배들한테 물었다. '루저'하면 뭐가 떠오르냐고.

우선 '키 작은 사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 그랬다. 수년전 여자들끼리 모여서 수다를 떠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남자의 키가 180센티미터가 안되면 루저라는 발언을 해서 대한민국 평균 키의 숏다리들을 열받게 했었다. '루저'는 아이돌그룹 빅뱅의 히트곡이라며 반색하는 후배도 있고 좌절을 의미하는 'OTL'이 떠오른다는 후배도 있다.
그런데 2000년 이전부터 록음악을 즐긴 사람이라면 아마도 벡(Beck)을 떠올리지 않을까.

밀레니엄을 앞둔 불안의 1900년대 말, 지구촌에는 청춘의 송가(頌歌)가 세 곡이 있었다. 너바나의 '십대의 영혼 같은 향기(Smells Like Teen Spirit)' 라디오헤드의 '찌질이(Creep)' 그리고 벡의 '실패자(Loser)'이다. 너바나는 커트 코베인의 죽음 이후 꺼지지 않은 록의 불꽃처럼 남아있고, 라디오헤드는 이제 인기로 보나 음악적 깊이로 보나 세계 최강의 록밴드로 성장했다.

그리고 1994년 말 그대로 혜성처럼 등장한 벡. 매가리 없는 얼굴에 170센티미터 정도의 서양인치고는 작은 키. 한국에 오면 일부 여성들에게 루저라고 놀림 받을 만한 신장이다. 그런데 이 친구, 천재다. 좀 심하게 말하면 베끼기 또는 편집의 천재다. 미술로 치면 꼴라쥬 기법이다. 벡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찬란했던 록음악 대가들의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의 초기 포크에서부터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록앤롤, 밥 딜런(Bob Dylan)의 포크가 뒤섞여 쏟아진다. 어린 시절 자기가 듣고 자랐던 위대한 음악의 유산을 물려받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창조한다. 거기에 어설픈 랩까지.
벡의 출현은 신선한 충격이었다(참 진부하지만 참 정확한 표현이다). 당시 미국 평단은 포크의 숨결 속에서 랩이 난무하며 펑크록이 눈을 부릅뜨고 있다고 평했다. 데뷔 앨범 '멜로우 골드(Mellow Gold)'는 게릴라식 힙합 샘플링과 순수한 포크의 만남이자, 슬래커(Slacker)와 래퍼와의 혼합물이라며 격하게 칭찬했다. 다양한 재료를 뒤섞어 새맛을 만들고 인디록의 정신으로 불맛을 살린다. 놀라운 짬뽕 실력이다.

그래서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많이 듣던 음악인데 새롭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생각도 든다. 복지리에 미나리를 넣을 생각을 누가 제일 먼저 했을까. 처음에는 분명히 복어는 복어대로 미나리는 미나리대로 따로 먹는 음식이었을 텐데... 연필과 지우개는 사용 목적이 완전히 다른 물건인데 누가 처음 연필 끝에 지우개를 장착할 생각을 했을까.

그래, 그런 거다. 태초에 창조주 말고는 새로운 것이 어디 있더냐. 발명만 위대한가 발견도 위대하다.

벡이 한국에 온다. 대한민국이 가장 뜨거운 계절 7월에. 1994년에 데뷔했으니 20년이 넘었다. 골동품 블루스부터 랩뮤직까지 마치 그의 음악이 대단히 복잡한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그의 음악은 클럽에서 틀어도 좋을 만큼 흥겨우면서 대중적이다.

이번이 첫 한국공연이다. 2010년 밥 딜런 공연을 직관한 이후 굵직한 스타들의 내한공연이 계속 열렸지만 심드렁했었다. 이번엔 갈 생각이다. 이제 슬슬 준비를 해야 한다. '루저'가 그의 대표곡이지만 그래미가 사랑하는 싱어송라이터답게 발표하는 앨범마다 명곡들이 득실거린다. 이 음악의 뮤직비디오를 다시 보면서 가사를 살펴본다. 안무를 익히고 가사를 외워야 떼춤과 떼창을 따라 할 수 있으니까.



임훈구 편집부장 keygrip@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하이브 막내딸’ 아일릿, K팝 최초 데뷔곡 빌보드 핫 100 진입

    #국내이슈

  •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대학 나온 미모의 26세 女 "돼지 키우며 월 114만원 벌지만 행복" '세상에 없는' 미모 뽑는다…세계 최초로 열리는 AI 미인대회

    #해외이슈

  •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 황사 극심, 뿌연 도심

    #포토PICK

  • 매끈한 뒷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마지막 V10 내연기관 람보르기니…'우라칸STJ' 출시 게걸음 주행하고 제자리 도는 車, 국내 첫선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비흡연 세대 법'으로 들끓는 영국 사회 [뉴스속 용어]'법사위원장'이 뭐길래…여야 쟁탈전 개막 [뉴스속 용어]韓 출산율 쇼크 부른 ‘차일드 페널티’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