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호윤 기자]우리나라 사은행사의 시작은 유통이라는 개념이 처음 도입됐던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0년대에는 백화점뿐만 아니라 일반 상회에서도 사은행사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1933년 인천에 소재한 비단가게인 태풍상회는 우대권을 소지한 고객에 한해 일정 금액 이상을 구입하면 세수비누, 치마, 저고리 등의 옷감과 함께 달력을 사은품으로 증정했다. 1936년 화신 연쇄점에서는 일원어치를 사면 10명에게 특등 상품으로 황소 한 마리를 경품으로 내걸어 화제를 모았다. 당시에 황소는 일반 농촌 가정에서 재산 목록 1호에 속했다.
1963년 신세계백화점은 사은행사 ‘X마스·연말·연시 행운부 특별대봉사’를 통해 50원 매상에 행운권 1매 증정, 5000원 매상 마다 ‘1년 상해보험증서’를 무상으로 증정했다. 행운권 추첨을 통해서는 특등 현금 30만원, 1등 고급 냉장고, 2등 고급 TV, 3등 고급 전화기를 증정했다. 당시 방직공장 여공들의 평급 월급은 3400원, 쇠고기 한근은 129원, 연탄 10장은 76원, 비누 1개가 38원이었다.
1970~1980년대 사은행사는 일정 매상금액을 기준으로 정해진 사은품을 증정하거나 감사권을 지급하는 행사가 주를 이뤘다. 사은품도 계절에 맞는 상품 또는 생활용품 중심으로 지급했다.
하지만 1998년 IMF 이후 소비 심리는 급격히 얼어붙게 된다. 그 와중에도 경품은 1억3000만원이 넘는 아파트가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이는 당시 미분양 아파트와 마이너스 성장으로 고민하던 건설업체와 유통업체가 공조한 마케팅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 경기는 다시 회복됐다. 여가를 선호하고 문화생활을 즐기려는 계층이 늘어나면서 개인의 건강과 웰빙 라이프 등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해외여행권, 스포츠·레저 및 건강·웰빙 상품이 경품으로 등장했다. 사은행사 품목에도 MP3플레이어, 컴퓨터, 디지털 카메라등의 최첨단 제품이 얼굴을 내밀었다. 고객이 원하는 대로 이용할 수 있는 상품권 지급도 각광받았다.
조호윤 기자 hod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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