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인류 최초로 민주주의를 발명했다는 그리스 시대에는 대화나 연설을 기막히게 함으로써 상대나 대중을 설득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변론술이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마이크와 스피커는 물론 대중매체나 전화 대신 오직 육성으로만 의사소통이 되던 당시 중요한 정치, 사회적 결정은 필요한 장소에 모인 필요한 사람들의 ‘말싸움’으로 이뤄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지 않는 대화

지지 않는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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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변론을 잘 하려면 머릿속에 남다른 지식의 양도 중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기억술도 발전했다. 그러다 동양에서는 고려의 직지심체요절, 서양에서는 구텐베르크 금속활자가 나와 책이 대량으로 생산되면서 기억술은 사라졌지만 변론술은 우리나라만 해도 대학입시와 취업이 논술과 토론 위주로 변화하면서 그 기세가 더욱 등등하다.

그런데 ‘변론’ 하면 왜 아리스토텔레스일까? 그 답은 시오노 나나미의 명저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 쉽게 나온다. 당시 로마를 이끌던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광장(아고라)에 모여 수시로 격렬한 토론을 벌이는 제도와 문화가 생생하게 복원돼서다. 아고라에서 아테네의 청년들을 향해 ‘너 자신을 알라’고 다그치다 ‘악법도 법이다’라며 독배를 마셨던 소크라테스의 변론술은 플라톤을 타고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른다.


정복왕 알렉산드로스가 존경한 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 교외의 리케이온 광장에 세운 학원에는 날마다 스승과 제자들 사이의 대화와 토론이 넘쳤다. 그 제자들에게 읽힌 책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변론술’인데 2,300 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변론의 고전으로 우뚝하나 시대의 변화, 고대 언어의 난해함으로 인해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번역서마저 없는 게 현실이다. 일본인 고전입문 집필가가 그 ‘변론술’ 중 지금의 상황에 맞는 내용들만 간추려 현대화한 원서를 번역한 책이 바로 ‘지지 않는 대화’이다.

많이 안다고 해서 설득력 있게 말을 잘 하거나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다. 옳은 소리를 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반드시 옳다고 인정해 주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상대방의 그른 소리가 옳은 소리로 둔갑해 나의 옳은 소리를 그른 소리로 만들어버린다. ‘정의와 진실이 끝내 승리한다, 역사가 증명할 것’이라는 말은 교과서에나 있는 말이지 현실은 사뭇 복잡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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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주장의 옳고 그름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효과적인 설득의 기술’이다. 무수한 경쟁자들 사이에 나를 뽑아달라는 신입생과 신입사원도, 무수한 상품 중에 내 상품을 사달라는 영업사원도, 하나같이 쟁쟁한 ‘입’들 사이에 나를 뽑아달라는 정치인도, 하다못해 집안의 대소사로 말싸움을 벌이는 부부에게도 설득의 기술은 ‘성취’를 위한 필요조건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배우는 변론술인 ‘지지 않는 대화’는 치열한 경쟁사회를 사는 현대인들의 최종병기다.


<다카하시 겐타로 지음/양혜윤 옮김/라이스메이커/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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