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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소풍'…우리와 좀 더 가까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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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

[리뷰] 연극 '소풍'…우리와 좀 더 가까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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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온유 기자]'세일즈맨의 죽음, 예술의전당, 1930년대 미국', '헨리4세, 세종문화회관, 1400년대 영국', '국물 있사옵니다, 국립극단, 1960년대 한국'….

최근 서울 시내 주요 극장에 오른 연극 작품들과 그 시대적 배경들이다. 모두 지금이 아닌 지난 시간들을 다룬다. 과거를 말하는 작품들이 인기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적지 않은 관객이 '직접 말하기'보다는 '돌려 말하기'에서 매력을 느낀다. 그래야 왠지 더 세련돼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마 오래 묵은 연극이 주는 보편적 메시지에 감탄할 것이다. 당대 사회를 꼬집는 불편한 작품일지라도 시대를 빗겨난 관객은 죄책감을 덜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현대극은 좀 다르다. 특히 지금 우리 사는 세상을 배경으로 만든 작품은 은유의 가치는 좀 덜하지만 보는 이의 삶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가는 매력이 있다. 관객은 마음을 쿡쿡 찌르는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잘 만든 작품이라면) 이를 통해 공감을 넘어 '나'를 쳐다보고 '우리'를 둘러보게 될 것이다.

2016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인 '소풍'은 바로 그런 작품이다. 연극은 자폐아 아들 은우를 둔 엄마 정희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90분 동안 가족의 집에 머무르며 그들의 일상을 쭉 지켜 본 관객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떠올렸을 것이다.

"은우가 어때서? 장애가 아니야. 우리랑 소통 방식이 다를 뿐이야." 정희는 많은 것들을 헤쳐나가야 했다. "은우를 전문 시설에 보내자"며 인정을 강요하는 남편 범석, "나한테 언제 관심이 있었다고?" 아픈 오빠에 모든 사랑을 빼앗겼다 원망하는 딸 은지, "무자식이 상팔자"라며 속을 뒤집는 동서. 정희는 아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비정상적인 시선뿐 가족 안에서도 수없이 싸워야 했다.
아무런 구심점 없이 제각각 분열하는 이들의 모습은 대화와 이해가 사라진 채 해체되는 지금의 가족과 닮아 있다. 극을 보는 관객은 고단한 정희를 본 뒤엔 나와 닮은 모습의 인물을 찾고 있을 것이다.

'가족', 어쩌면 구태의연한 소재의 연극에 이런 감동이 깃들 수 있는 건 '신파'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한 연출가 김승철과 배우들의 힘이다. 작가 이지영의 '소풍'은 '2015 신진극작가전 희곡아솟아라' 당선작이다. 지난해 여름 네 개 극단이 20여분간의 시범공연으로 경연을 벌였고 그 중 창작공동체 아르케가 제작사로 선정됐다. 당시 작품 해석과 배우들의 앙상블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폐아를 연기하는 은우를 맡은 배우 송현섭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대사가 아닌 눈짓과 손짓, 기괴한 소리로 자신을 표현하는 그의 고단함은 연극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된다. 정희를 연기하는 배우 이경성은 감정의 과잉을 조심했다. 관객이 연민을 느끼면서도 정희를 동정하지 않게끔 딱 그만큼만 절박해야 했다. 은지 역의 배우 정다정 역시 가족 안에서 사랑받지 못한 불안한 모습을 고3의 방식으로 잘 풀어냈다.

정희는 은우와 함께 소풍을 떠난다. 그리고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읊조린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현실이 싫어 거실 어항에 얼굴을 담가 보기도 하고 아들이 즐겨 먹는 요구르트에 수면제를 넣어 같이 죽어볼까도 했다. 하지만 엄마인 정희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건 인생을 잠시 왔다가는 소풍이라 여기는 달관이고 낙관이었다.

극의 끝에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관객이 이를 불평할 수 없는 건 그게 바로 쉽지 않은 우리의 사람살이인 탓이다. 4월17일까지 동양예술극장, 3만원. 문의 070-7869-2089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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