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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덕의 디스코피아 18] The Who - It's hard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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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을 앞둔 악동들의 성숙기

The Who - It's h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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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후(The Who)를 생각하면 대단한 악동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죄 없는 기타와 앰프를 마구 부수는 퍼포먼스와 애꿎은 TV를 호텔 창밖으로 던져버리는 습관까지. 슬프게도 후자가 후배 밴드들의 귀감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이들의 과격한 음악과 난폭한 행동은 꽤 잘 어울리는 구석이 있었다.

「이츠 하드(It’s Hard)」에서는 이러한 과격함이 상당부분 사라졌음을 느낄 수 있다. 첫 곡 ‘아테나(Athena)’에서처럼 짧고 직선적인 멜로디로 귀를 사로잡는 재주는 여전하다. 그러나 어쩐지 단정하며 발랄하기까지 한 이 곡에서 피트 타운젠드(Pete Townshend)의 과격한 퍼포먼스를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후의 음악이 눈에 띄게 부드러워지는 이러한 변화는 사실 이 앨범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이 가볍고 신나는 음악이 주류를 이뤘던 외부의 영향도 있겠지만, 후 정도의 거물에겐 내부적 원인이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약물과다 복용으로 인한 키스 문(Keith Moon)의 사망과 이제 마흔을 바라보게 된 멤버들의 나이가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과격함과 직설적인 대신 안정적인 음악으로 변화한 징후는 도처에서 드러난다. 케니 존스(Kenny Johns)의 드럼은 훌륭하지만 키스 문의 열정이 자꾸 아쉽게 느껴지며, 기관총을 쏘듯이 연주했던 존 엔트위즐(John Entwistle)의 베이스는 이제 안전한 길만 찾아다닌다. 로저 달트리(Roger Daltrey)의 보컬은 다른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부드러워졌다.

이들의 음악은 이제 유쾌하고(‘It’s hard’), 익살스럽기까지 (‘Why did I fall that’)하다. ‘원 앳 어 타임(One at a time)’에서 간간히 내면의 불꽃을 보여주지만 '원 라잎스 이너프(One Life’s enough)'나 ‘어 맨 이즈 어 맨(A man is a man)’ 같은 곡들은 맥없이 늘어지는 기분이다. 박진감의 실종은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는 것인가라는 한탄이 나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앨범엔 젊음이 보여주지 못할 매력이 있다. 일찍이 “더 늙기 전에 죽어버렸음 좋겠네(I hope I die before I get old)”라고 세상을 조소하던 그들에게서 볼 수 없던 정신적 성숙이다. ‘이츠 유어 턴(It’s your turn)’에서는 “기댈 어깨가 필요한(All you want is some hope and a shoulder to cry on)” 청자들을 따듯한 시선으로 위로한다.

‘아이브 노운 노 워(I’ve known no war)’는 이 앨범 최고의 트랙이다. 웅장한 리프와 멜로디, 냉전과 핵전쟁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메시지는 세상의 관찰자인 아티스트로서 깊이를 보여준다. 곡은 타운젠드의 자신감만큼 성공하진 못했으나, 후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히기에 부족하지 않다.

「이츠 하드」는 재결성하여 2006년 「엔들리스 와이어(Endless Wire)」를 발매할 때까지 이들의 마지막 앨범이었다. 대단원이라기엔 지나온 세월만큼 화려하지 않지만 초라하지도 않다. 깊이와 편안함을 담아내며 20년 가까운 밴드의 역사는 이 앨범으로 순조롭게 완성된다.

■ '서덕의 디스코피아'는 … 음반(Disc)을 통해 음악을 즐기는 독자를 위해 '잘 알려진 아티스트의 덜 알려진 명반'이나 '잘 알려진 명반의 덜 알려진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코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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