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을 앞둔 악동들의 성숙기
「이츠 하드(It’s Hard)」에서는 이러한 과격함이 상당부분 사라졌음을 느낄 수 있다. 첫 곡 ‘아테나(Athena)’에서처럼 짧고 직선적인 멜로디로 귀를 사로잡는 재주는 여전하다. 그러나 어쩐지 단정하며 발랄하기까지 한 이 곡에서 피트 타운젠드(Pete Townshend)의 과격한 퍼포먼스를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과격함과 직설적인 대신 안정적인 음악으로 변화한 징후는 도처에서 드러난다. 케니 존스(Kenny Johns)의 드럼은 훌륭하지만 키스 문의 열정이 자꾸 아쉽게 느껴지며, 기관총을 쏘듯이 연주했던 존 엔트위즐(John Entwistle)의 베이스는 이제 안전한 길만 찾아다닌다. 로저 달트리(Roger Daltrey)의 보컬은 다른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부드러워졌다.
이들의 음악은 이제 유쾌하고(‘It’s hard’), 익살스럽기까지 (‘Why did I fall that’)하다. ‘원 앳 어 타임(One at a time)’에서 간간히 내면의 불꽃을 보여주지만 '원 라잎스 이너프(One Life’s enough)'나 ‘어 맨 이즈 어 맨(A man is a man)’ 같은 곡들은 맥없이 늘어지는 기분이다. 박진감의 실종은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는 것인가라는 한탄이 나오기도 한다.
‘아이브 노운 노 워(I’ve known no war)’는 이 앨범 최고의 트랙이다. 웅장한 리프와 멜로디, 냉전과 핵전쟁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메시지는 세상의 관찰자인 아티스트로서 깊이를 보여준다. 곡은 타운젠드의 자신감만큼 성공하진 못했으나, 후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히기에 부족하지 않다.
「이츠 하드」는 재결성하여 2006년 「엔들리스 와이어(Endless Wire)」를 발매할 때까지 이들의 마지막 앨범이었다. 대단원이라기엔 지나온 세월만큼 화려하지 않지만 초라하지도 않다. 깊이와 편안함을 담아내며 20년 가까운 밴드의 역사는 이 앨범으로 순조롭게 완성된다.
■ '서덕의 디스코피아'는 … 음반(Disc)을 통해 음악을 즐기는 독자를 위해 '잘 알려진 아티스트의 덜 알려진 명반'이나 '잘 알려진 명반의 덜 알려진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코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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