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 원전도 늙는다"…대기부식 '정밀 측정' 길 열렸다[과학을읽다]
고리 2·3호기 실증…장기 정지 설비 건전성 평가 신뢰도 높인다
장기간 멈춰 선 원자력발전소(원전)의 '보이지 않는 노화'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실증됐다. 건식 상태로 방치되는 배관·기기 내부의 대기부식을 분리·정량화할 수 있게 되면서, 원전 계속운전 판단의 핵심 데이터 확보 기반이 마련됐다는 평가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장기 정지 원전의 2차 계통 설비에서 발생하는 대기부식 정도를 '감시시편(surveillance specimen)'을 활용해 정밀 측정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22일 밝혔다.
원전은 유지보수나 인허가 등의 이유로 장기간 정지될 수 있는데, 이때 원자로 외 2차 계통 배관과 주요 기기는 물을 제거한 '건식 상태'로 관리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공기에 노출된 금속 표면에 부식이 진행되지만, 기존에는 그 정도를 정확히 구분·측정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설비 손상 없이 '정지 이후 부식만' 정밀 분리
기존 방식은 설비 표면에서 시료를 직접 채취해 부식 정도를 추정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운전 중 이미 형성된 산화막과 정지 이후 새로 생긴 산화물을 구분하기 어려워 실제 '정지 기간 동안의 부식'만 따로 평가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번에 개발된 기술의 핵심은 '감시시편'이다. 연구팀은 원전 2차 계통 배관에 사용되는 탄소강을 기반으로, 정상 운전 시 형성되는 산화막을 인위적으로 재현한 시편을 제작했다. 이를 원전 정지 이후 설비 내부에 장착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중량 변화를 측정해 부식률을 정량적으로 환산하는 방식이다.
이 방법은 설비를 훼손하지 않고도 부식 상태를 평가할 수 있으며, 특히 '정지 이후 발생한 대기부식'만을 분리해 측정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또 설비 내부 여러 위치에 시편을 설치하면 부식 특성을 체계적으로 추적할 수 있어, 설비별 맞춤형 유지관리 전략 수립에도 활용 가능하다.
연구팀은 해당 기술을 고리 2호기와 고리 3호기에 적용해 실증을 마쳤다. 고리 2호기는 최근 계속운전 심사를 통과했으며, 고리 3호기는 현재 심사가 진행 중이다.
향후 원전 계속운전 인허가에 수년이 소요되는 구조를 고려하면 장기 정지 상태의 설비 관리 중요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번 기술은 건식관리 기간 동안 설비 건전성 평가의 신뢰도를 높이고, 계속운전 여부 판단에 필요한 실증 데이터를 제공하는 데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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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한국원자력연구원 재료안전기술연구부장은 "기존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고 실제 부식 상태를 반영할 수 있는 평가 기술"이라며 "국내 원전의 계속운전 확대 흐름에 맞춰 설비 건전성 관리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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