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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호봉제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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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 임금이라 쓰고, 低성과자 철밥통이라 읽는다

은행권 호봉제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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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비율 92% 全산업계와 큰 차이
은행 수익성 악화에 인건비부담 더 해
항아리형 인력구조…조직활력 저하
성과주의 임금 도입, 노사합의가 관건


[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A은행을 18년 째 다니고 있는 B씨는 만년 과장이다. B씨는 지점 창구에서 여신심사평가와 기업상품판매를 담당하고 있다. 동기들은 어느새 지점장이 됐지만 B씨는 과장에서 승진하지 못하고 있다. 40대 후반의 B씨는 상품을 하나라도 더 팔겠다는 의욕은 없다. 그런다고 지점장을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정년때까지 자리를 보전할 수 있으면 최고라고 생각한다. B씨의 연봉은 8000만원이다.
같은 은행에서 일하는 C씨는 입사한 지 2년 째다. B씨와 마찬가지로 창구에서 일하는 C씨는 여신, 수신, 외환까지 하루종일 고객들을 만나느라 정신이 없다. 주변 지인은 물론 창구를 찾는 고객들에게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지난달엔 좋은 성과를 내서 지점장으로부터 칭찬도 받았다. C씨는 하루에 상품 1개 이상 판매하는 것을 목표로 지점을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매번 신상품을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C씨의 연봉은 B씨의 절반인 4000만원에 불과하다. C씨는 "성과만큼 연봉을 받는다면 더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솔직히 좀 아쉬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의 최대 골칫거리 '호봉제'는 국내 은행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주 요인으로 꼽힌다.하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란 요원하다. 금융당국과 각 은행들이 성과주의 도입을 적극 추진 중이지만 마땅한 동력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성과가 아닌 연차에 따라 올라가는 호봉제가 효율성을 떨어트린다는 지적에 은행권 내부가 속이 곪아가고 있다.

현재 금융권의 호봉제 비율은 전 산업에 비해 월등히 높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은행권 성과주의 도입의 영향과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권의 호봉제 도입 비율은 91.8%(2014년 기준)다. 산업계 평균(60.2%)에 비해 31.6%포인트 높다.
이 중 고과에 따라 차등해 호봉이 오르는 경우는 25%에 불과하며 전체 보상의 87.5%가 호봉에 따른 정액급여로 이뤄진다.

이에 은행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음에도 인건비 부담은 늘어난다. 급여비용에서 판매관리비(판관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50%를 처음으로 넘긴 후 최근 52~53%까지 상승했다. 특히 급여를 제외한 기타판관비가 2009~2015년 연평균 0.84%씩 감소했지만 급여비용은 연평균 7.93%씩 올라 전체 판관비 상승을 이끌고 있다.

연차에 따라 상승하는 임금 수준도 전체 산업계보다 높다. 1년 미만 근로자 대비 10년 이상 근로자의 임금수준은 금융업이 2.75배로, 산업계 평균(2.39배)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호봉제가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은행이 행원급보다 중간관리자가 많은 '항아리형 인력구조'이기 때문이다. 연차에 따라 인건비가 대폭 확대되면서 은행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은행권이 특별퇴직 등을 통해 퇴직자 수가 전년보다 2배 정도 늘어났지만 여전히 인건비가 높다.

금융권의 강력한 산별 노조는 성과주의 도입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노조는 "성과주의가 일자리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성과주의를 도입해 적절한 보상을 한다면 사회 전체적으로 일자리는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며 "성과주의를 보는 협소한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성과주의 도입이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노사간의 공감대가 선행돼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이재은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성과주의 임금체계 개혁의 성패는 사용자와 노동자가 모두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인 성과평가 체계의 확립에 달려 있다"며 "현장과의 소통을 통한 자발적인 동참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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