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욱은 63년 7월부터 중정부장으로 일했지만 69년 전격 경질된 뒤 73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문제는 망명 이후 행보였다. 그는 미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비난하며 각종 치부를 폭로했다. 정권의 비리가 담긴 회고록도 썼다. 정권의 실세였다가 반대편으로 돌아서 대통령을 공격하던 그가 갑자기 실종되자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중앙정보부가 요원을 보내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했다는 얘기가 퍼졌다. 사체가 발견되지 않아 파리 근교서 살해한 후 양계장 분쇄기로 처리했다는 설도 있었고 서울로 납치돼 청와대 지하에서 죽음을 맞았다는 주장도 떠돌았다.
김재규가 살해를 지시했으며 이에 따라 프랑스에 있던 중정 연수생 두 명이 동구권의 살인청부업자 두 명과 함께 1979년 10월 7일 김형욱을 납치해 파리 근교로 데려가 권총으로 살해했다는 것이다. 김형욱을 직접 살해한 제3국인 두 명은 미화 10만 달러를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진실위는 박정희 대통령이 김형욱의 반국가 행위 처리 문제에 깊이 관여했지만 살해를 직접 지시한 것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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