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뒤덮은 '검은 물결'…삼성 4만 노조 "성과급 상한 폐지" 한 목소리
삼성 초기업노조 공동투쟁본부
평택사업장 앞 투쟁 결의 대회
내달 21일부터 총파업 예고
23일 오후 2시,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 기지인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 앞 8차선 도로는 평소의 분주함 대신 거대한 '검은 물결'에 휩싸였다. 전면 파업의 전초전이라 불리는 삼성전자 노동조합의 투쟁 결의 대회 현장이다.
이날 현장에는 주최 측 추산 4만명의 조합원이 집결했다. 삼성전자 노사관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체행동이다. 한낮의 태양 아래 이들이 맞춰 입은 검은색 조끼는 회색빛 반도체 단지와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단상에 오른 집행부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공장 외벽을 때릴 때마다, 모인 조합원들은 일제히 주먹을 맞쥐고 "투쟁"을 연호했다.
2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투쟁 결의대회에서 검은색 조끼를 갖춰 입은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진영 기자
노조의 요구는 선명했다. ▲성과급 산정 기준의 투명화 ▲연봉 50% 이내 성과급 상한 폐지 ▲영업이익의 15% 재원 명문화다. 투쟁사에 나선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 최승호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교섭 시작 이후 4개월간 성실히 교섭에 임했으나,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며 "성과급 투명화, 상한 폐지 제도화는 외면한 채 일회성 포상으로 교섭을 마무리하려 한 사측의 태도를 더는 참을 수 없다"고 투쟁의 배경을 밝혔다.
최 위원장은 이어 "대한민국 최고의 이공계 인재들이 다른 길을 선택하고 있는 지금, 정당한 보상 없이는 대한민국의 미래 산업을 누구도 책임질 수 없다"며 "이번 투쟁은 단순한 임금 투쟁이 아니라 삼성전자의 미래와 대한민국 이공계의 미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싸움"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결의대회에서 특히 주목받은 대목은 노조가 다음 행보로 '체크오프'(조합비 급여공제) 도입을 공식 선언한 점이다. 체크오프란 사측이 매달 월급에서 노조비를 미리 공제해 노조에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체크오프가 도입되면 노조의 재정 기반은 비약적으로 안정되며, 회사가 노조를 실질적인 협상 파트너로 공식 인정한다는 상징적 의미도 있다. 4만명의 거대 조직이 안정적인 자금력까지 갖추게 될 경우, 향후 노사 관계의 주도권은 완전히 노조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공동투쟁본부는 이날 "오늘의 외침이 메아리에 그친다면 예고대로 5월 총파업에 돌입하겠다"며 최후통첩을 날렸다. 구체적으로는 5월 21일부터 6월 7일까지 18일간의 전면 파업 카드다. 올해 삼성전자의 예상 연간 영업이익이 약 300조원임을 고려하면, 반도체 라인이 멈춰 설 경우 하루 약 1조원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평택 공장은 2018년 정전사고로 28분가량 가동이 중단되며 약 5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 바 있다. 이를 하루로 환산하면 약 2조6000억원에 달한다.
2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투쟁 결의대회에서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 최승호 위원장이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김진영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업계에서는 노조가 이처럼 천문학적인 손실을 수반하는 총파업을 강행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분위기다. 만약 파업으로 생산 차질이 빚어져 약속된 물량을 적기에 공급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경우 공급망 복원력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도와 브랜드 평판 실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파업으로 고객사 납기를 지키지 못할 경우, 위약 논란과 배상 책임 이슈로 번져 추가적인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노조가 회사의 영업이익을 본인들의 정당한 몫이라고 주장하려면, 자신들의 행동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도 책임질 수 있어야 설득력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측은 노조의 파업과 관련해 반도체 사업장의 안전과 직결된 설비 운영은 쟁의행위와 별개로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도체 생산 라인은 24시간 가동이 필수인 만큼, 파업으로 가동이 중단될 경우 삼성뿐 아니라 글로벌 IT 산업 전반에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해서다.
2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투쟁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원본보기 아이콘사측은 최근 사내 게시판을 통해 안전보호시설 유지운영과 원료·제품의 변질 또는 부패 방지에 관여하는 인력에 한해서라도 정상 근무를 요청한 상태다. 이는 총 12만8000명으로 전체 직원 중 약 5% 수준이다. 실제로 노동조합법 제42조 제2항은 사업장 안전보호시설의 정상적인 유지·운영을 정지·폐지 또는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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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관계자는 "임직원과 지역사회의 안전을 지키는 한편, 고객사 피해와 납기 차질, 글로벌 공급망 혼선, 국가 경제에 미칠 부담을 줄이기 위해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2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투쟁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원본보기 아이콘한편 현장 인근에서는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 소속 회원 20여 명이 맞불 집회를 열었다. 집회 주최자인 민경권 씨(79년생, 스타트업 운영)는 성명서 낭독과 질의응답을 통해 "직원들의 무도한 요구 속에 500만 삼성전자 주주들이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며 현 상황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최 위원장은 집회 종료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노조의 무리한 성과급 요구를 두고 주주들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점에 대해 "우리 노조 역시 삼성전자의 주주들"이라며 "성과급 상한 폐지는 경쟁사도 이뤄냈고, TSMC도 (영업이익의) 10% 이상을 (성과급 재원으로) 사용하는 등 과한 요구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최근 4개월간 SK하이닉스로 이직한 조합원만 200명이 넘는다"며 "이는 절대 정상적인 구조가 아니다. 이재용 회장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싶다"고 밝혔다.
2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투쟁 결의대회에서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 최승호 위원장이 집회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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