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년 전인 1884년 오늘(음력 10월 17일) 밤 10시. 한국 근대사에 중요한 분수령이 된 갑신정변이 일어난 날입니다. 이 시기 조선은 개혁을 해야 한다는 개화파와 이를 반대하는 수구파의 대립이 첨예하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또 일본과 청나라가 조선을 놓고 서로 힘겨루기를 있는 형국이었죠.
개화파를 주도한 인물들은 주로 양반자제들 이었는데요.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김윤식 등이 그들입니다. 하지만 그들도 2년 앞서 일어난 임오군란을 계기로 급진파와 온건파로 나뉘어 내부 갈등을 벌입니다.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은 급진파로, 홍영식, 김윤식 등은 온건파로 갈리죠.
정변 주도세력은 12월 6일 양반 제도 폐지, 과부 재가 허용 등과 같은 현대적 정강 정책을 내놓습니다. 그러나 당시 국민들은 개화파의 사상이 일본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고 보고 거의 호응하지 않습니다. 일본은 조선 침략의 구실로 항상 내정개혁을 부르짖어 왔었기 때문에 당시 백성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은 개화파를 오히려 일본의 앞잡이로까지 여겼습니다.
또 과거제 폐지는 과거를 통해 신분 상승하려는 지방의 유생들이 반발했습니다. 너무 시대에 앞선 정책이었던 셈입니다. 개화파들은 또 수구파 외의 다른 세력들을 포섭해 정치세력화 하지도 못했고, 자금도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섣부르게 거사를 했습니다.
갑신정변은 근대국가를 건설하려 한 자주적 운동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랜 중국의 속국에서 탈피하고 계급제도를 혁파하려 했던 점에서 그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 일부 지식인들의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뚜렷했습니다.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itbri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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