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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프론티어]"'여자라서' 차별? 이겨내니 경쟁력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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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은행 첫 여성임원 신순철 부행장

신순철 신한은행 부행장

신순철 신한은행 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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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걸은 길, 후배 이정표 되기를
지금은 사라진 전환고시 7전 8기 합격
35년 다양한 업무 겪은 게 최고의 스펙
금융정보보안 CIO 새 도전 '두근'
세미나·학술회의 찾아다니며 '열공' 중

[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

신순철 신한은행 부행장(54)의 집무실 책상 뒤에 걸린 글귀다. '인간의 일을 다하고 나서 천명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15년 전 행사장에서 만난 서예가에게 부탁해 얻은 이후 늘 가슴에 담고 있다. 힘이 들 때마다 '진인사 대천명'을 읊조리며 '지금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를 되묻는다. 그 끝없는 질문이 지금의 신 부행장을 단련시켰다. 진인사 대천명은 신 부행장의 또 다른 자아(自我)다.
◆역경이야말로 진짜 '스펙'이다 = 35년. 1979년 대전여상을 졸업하고 조흥은행(현 신한은행)에 입행한 신 부행장이 일해 온 햇수다. 웬만한 남성들도 한 직장에 35년간 근무하기 힘든데 하물며 여성인 신 부행장은 더욱 그러하지 않았을까. '여자라서 차별이 많지 않았느냐'며 운을 떼자 그는 웃으며 "그렇다마다요. 그런데 그게 다 나중에 내 경쟁력이 되더라고요"하고 답했다.

차별이 힘이 된다는 게 무슨 뜻일까. 신 부행장이 입사했을 당시만 해도 여성 행원들은 지폐 세기와 입출금 등 단순업무에 배치됐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함께 입사한 남성 행원들보다 호봉도 낮게 받았다. 남성들과 같은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행원 전환고시'를 봐야 했다. 1년에 2~5명만이 통과하는 어려운 시험이었다. 선후배들이 '해 봐야 안된다'며 말렸지만, 신 부행장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각오로 4년간 달라붙었다. 8번의 시험을 본 끝에 그는 5명 안에 들 수 있었다.

신 부행장은 "전환고시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공부를 했고, 동년배 남자들보다 월등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며 "결국 전환고시라는 차별이 나를 더 경쟁력있게 만들어준 셈"이라고 말했다. 전환고시는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라졌지만, 신 부행장은 그 이후로도 알게 모르게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 그는 그럴 때마다 '결국 모두 나의 경쟁력이 된다'는 마음으로 참아냈다.
그는 "'여성이라서 안된다'는 차별을 이겨내는 것은 힘들지만 이겨내면 주변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된다"며 "전환고시는 내가 통과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지만, 향후 승진에도 그 경험이 보탬이 됐다"고 말했다.

신 부행장은 '여자니까 못한다', '여자라서 안된다'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 단 한 명의 여성의 실수를 여성 전체로 확대하는 남성들의 '편견'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여성들이 남성보다 1.5배 더 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신한은행 과장급 여성 직원들의 모임이 있는데 언제나 '우리는 남자들보다 1.5배 더 열심히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자긍심을 갖고, 여성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자고 서로를 독려한다"고 말했다.

◆'첫 번째'라는 무거운 책임감 =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부수호란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신한은행 첫 여성 임원으로 선임된 후 신 부행장이 자주 되뇌이는 서산대사의 선시다. 백범 김구 선생의 애송시이기도 한 이 시는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는 함부로 걷지 말라. 오늘 남긴 내 발자국은 뒷사람의 길이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신 부행장은 "선배로서 내 발자국이 후배들에게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 생각하니 어깨가 무겁고 사명감도 깊어진다"며 "내가 뱉은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조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대를 앞서간 사람(프론티어)으로서, 그는 후배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프론티어가 되기 위해서는 언제나 한 단계 위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신 부행장은 "처음에 은행에 들어올 때부터 '임원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기보다, 언제나 한 단계 위를 보고 행동했다"며 "영업점에 배치됐을 때는 그 점포의 요직을 꼭 거쳐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외환업무 파트가 새로 생겼을 때는 외환업무를 보고 싶다고 요청도 하면서 다양하게 업무를 섭렵하다 보니 승진도 하고 기회도 왔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높은 곳을 보기보다는 자신이 이룩할 수 있는 현실적인 꿈을 보면서 차근차근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신 부행장은 대부분이 결혼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던 과거에 비하면 후배 여성들의 꿈도 점점 커져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옛날에는 '결혼하면 그만둬야지'라는 생각이 보편적이었는데, 요즘은 절반 이상의 여성이 자기 꿈을 갖고 도전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요즘에는 여성 대통령, 여성 행장, 여성 임원들도 늘면서 여성들이 꾸는 꿈의 크기도 더 커졌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그는 프론티어로서의 부담감과 함께 자부심도 가질 수 있다고 털어놨다. 신 부행장은 "여직원들과 상담할 때마다 '제 꿈이 커질 수 있도록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며 "어깨가 무거운데, 동시에 후배들에게 '길'이 돼 주었다는 생각을 하면 몸이 가볍다"고 미소를 지었다.

신순철 부행장 프로필

신순철 부행장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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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죄책감을 털어버려라 = 그런 신 부행장도 '도전정신' 만으로 해결이 안 되는 일이 있었다. 바로 육아였다. 초등학교 2학년 딸이 어버이날 편지에 '엄마가 회사에 안 나가면 좋겠다'고 쓴 것을 본 순간, '철의 여인'인 그의 마음도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언젠가는 엄마의 마음을 알아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버텼다.

신 부행장은 "진정성은 결국 통한다"며 "아이들 역시 돌봐줄 시간이 적고 놀아주지는 못하더라도 자라면 엄마의 사랑을 알아준다"고 말했다. 그의 진정성이 통했는지, 30대가 된 딸은 이제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해 준다고 한다. 얼마 전 가정을 꾸린 아들은 "은행 업무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어버이날 선물로 웨어러블 기기를 선물했다.

그는 자신에게 상담하러 오는 후배들에게도 언제나 같은 조언을 건넨다고 한다. 아이들을 떼어놓고 직장에 다니려니 마음이 아파 퇴사하겠다는 한 여성 과장을 그는 기필코 말렸다. 신 부행장은 "지금 같이 있어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사랑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런 과정을 모두 견디고 나면 아이들이 나중에 어머니를 자랑스러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 부행장은 여기서 더 나아가 '아이들을 믿으라'고도 말한다.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아이들은 나약하지 않다"며 "내가 돌봐주지 못하니 아이들이 게임에 빠지고, 공부도 안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원위치로 돌아오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여성들 '편함' 버리고 전략적으로 살라 = "여성들이 아는 언니, 동생들하고만 친하게 지내면 발전이 없어요.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도 만나고 견문을 넓혀야 합니다."

신 부행장은 후배들에게 자극을 주는 선배 역할을 마다지 않는다. 30년 전 전환고시를 보며 '이 길이 맞나'고 고민할 때마다 주변의 여성 선배들이 '기회가 주어졌는데 왜 도전하지 않느냐'며 쉴새없이 자극을 줬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뚜렷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극을 주는 선배만큼 고마운 분이 없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차별을 넘어서는 것만으로도 앞서 나가는 게 가능했지만, 남녀평등이 어느 정도 실현된 요즘에는 이를 넘어선 '특별함'이 필요하다. 신 부행장이 '전략'을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요즘도 사회적 인프라가 여전히 남성 위주지만, 여성차별이 과거에 비해서 그렇게 심한 편은 아니다"라며 "여성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그 지위에 안주하지 말고 전략적인 마인드를 갖고 남자들보다 앞서가는 실력을 갖추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일은 잘하는데 회사생활을 못 하는 여성'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편함'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여성들이 편한 친구, 편한 언니들과는 잘 어울려 다니면서 그 외에는 인간관계의 외연을 넓히려는 시도를 잘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신 부행장은 "회사 내 선배, 동기를 탈피해 타 회사, 타 산업 분야의 친구들과 만나서 대화와 인맥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며 "꼭 친구가 아니더라도 사회 다방면의 친목모임을 활용해 식견을 넓혀야 다른 시각에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신 부행장은 여성들이 단편적, 단기적인 사고나 지금 당장 눈앞의 일은 꼼꼼하게 잘 하면서도 멀리 보고 장기적으로 시야를 넓게, 글로벌적으로 가져가는 것에는 취약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네트워크는 물론 신문, 책 등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 나의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좀 더 멀리 보고 전략적으로 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며 "나 중심적인 생각, 틀에 박힌 생각으로는 특별해질 수 없다"고 말했다.

'여자가 나댄다'는 사회의 시선에는 초연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신 부행장은 "여자가 중요한 자리에 앉으면 '여자가 뭘 안다고…' 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남자들이 해도 잘 못할 것 같은 일도 '여자가 해서 잘못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며 "이런 사회풍조를 한꺼번에 바꿀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외유내강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생 자체가 하나의 큰 도전이었던 신 부행장은 올 들어 새로운 도전의 길을 걷고 있다. 그가 맡은 최고정보책임자(CIO) 직위는 최근 금융권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인 정보보안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금융권 보안망을 시도 때도 없이 뚫고 들어오는 해커들의 공격에 언제나 깨어있어야 하는 만큼 부담도 크다. 신 부행장은 "과거 정보통신(IT) 기반 사업의 영업을 맡은 일은 있지만 CIO는 새로운 도전이라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며 "세미나나 학술회의 등을 찾아다니면서 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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