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정치적 갈등이 있더라도 인도적인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와 협력은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
20년 전부터 유네스코에 몸담으면서 평화운동, 대북지원 사업, 국제이해교육 등에 앞장서 온 이삼열 유네스코 아태무형유산센터 사무총장(73).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 인근 한 커피숍에서 만난 이사무총장은 고령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문화적 소통'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이 사무총장은 "우리 문화만 고유하고 독특한 게 아니다. 동북아 국가 내에는 공통된 문화가 있고 한ㆍ중ㆍ일은 공유할 것이 많다. 제사와 서원 문화, 가정풍습 등 수도 없다"며 "우리의 정신문화가치를 제대로 알고, 살리려면 다른 나라들이 비슷한 문화를 어떻게 다르게 발전시켜 왔는지 비교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시절 대북지원 사업에서 상당한 역할을 해왔던 그였기에 특히 북한과의 문화교류는 이 사무총장에게 각별한 책임의식을 느끼게 한다. 그는 "사무총장 부임 시작부터 남북의 무형유산 교류와 협력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다. 같은 민족이 지닌 전통, 풍습은 남북이 공동으로 지닌 정신문화며, 이를 연구하고 알리는 교육, 출판 사업 등을 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울란바토르에서 열리는 이번 국제회의에 북한은 로철수 북한무형유산보호청 차장 등 6명을, 우리나라에서는 센터 직원들 외에 고고학자 등 전문가, 정부관계자 등 7명이 대표단으로 꾸려졌다.
대북지원 사업을 통한 북한과의 관계개선도 이끌어 냈다. 특히 2007년 말 북한에서 유일한 평양 교육도서인쇄공장에서 한국이 지원한 윤전기가 첫 시험 가동되던 날의 추억은 이 사무총장에게 여전히 큰 감동으로 밀려온다. 그는 "인쇄기도 변변치 않고 종이도 구하기 힘든 북한 아이들은 교과서 한 권을 4인 1조로 돌려보며 책에 글씨 하나 못 쓰고 줄 하나 그을 수 없이 공부하고 있었다"며 "2년 반의 사업추진 기간 동안 북한 핵실험으로 인쇄기 지원이 중단될 위기 등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정부ㆍ기업 등이 함께 힘을 모아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인쇄기와 함께 북에 매년 200톤의 종이를 지원했던 사업은 이명박 정부 들어 중단된 상황이다.
이 사무총장은 "정부가 인도적인 분야나 문화·스포츠 등 비정치적 분야의 교류 사업들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줬으면 좋겠다. 이것이 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박'이라는 슬로건이 걸어가야 할 과정이 될 것"이라며 "유네스코와 같은 국제기구를 통해서라면 합법적으로 사업들을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유네스코는 유사한 문화유산에 대해 각국이 공동으로 '세계문화유산 또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신청토록 권고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남북한이 공동으로 가진 문화유산에 대해선 함께 등재신청을 추진할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이 사무총장은 "북한도 최근 무형문화유산에 대해 관심을 쏟고 있고, 이에 대한 정보교류나 제도, 교육 등 지원을 아태무형유산센터가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해 초 '아리랑'에 이어 지난 3월 '김치 담그기 풍습'을 유네스코에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 신청한 바 있다. '북한 아리랑'에 대한 등재 확정은 오는 11월께 결정될 예정이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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