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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애유소망(愛有所亡)(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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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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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의 항룡유회(亢龍有悔)란 말을 보고선 한 동안 이 말이 내 뒷골 어딘가에 박혔습니다. 지금 치솟는 용은 나중에 후회하리라. 그런데 왜 저 잘나가는 용이 후회할까,를 생각했습니다. 생각해낸 답은 이런 겁니다. 왜냐하면 그는 계속 저렇게 잘나갈 순 없을 거니까. 말하자면, 주역은 우리의 시력에 주의를 준 겁니다. 우리에겐, 눈 앞에 닥친 것 만이 보이거든요. 다른 건 안보이죠. 저 예언의 경전은 '잠깐 뒤'를 보여줌으로써 세상 돌아가는 통박을 역설합니다. 올라가는 용은 곧 내려갈 수 밖에 없다. 올라갈 때 좋았다면 내려갈 땐 그 좋음이 경감하거나 싫음이 증대되는 형태로 마음이 바뀌리라. 그러면 그 싫음 미리 계산해서 좋을 때조차도 좋아하지 말아야 한단 말인가. 그건 주역의 의도가 아닐 겁니다. 좋을 때 좋음이 완전하지 않은 것처럼 싫음에 대해 너무 낙망하거나 놀라지 말라는 게 그 취지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까 한창 좋은 팔자에게 초치고 소금 뿌리려는 게 아니라, 좋음을 아끼듯 싫음도 에누리해서 받아들일 줄 알아야 삶이 다소나마 평온해진다는 개연성을 설파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이러느냐고요? 장자의 애유소망을 얘기하고 싶어서 그럽니다. 장자 시대엔 말이 애완동물이었습니다. 요즘 샴푸해주고 마사지해주고 러닝머신까지 사주는 견공 못잖게 당시 사람들은 말을 애지중지했나 봅니다. 말에 드레스를 입히는 것은 물론이고 말발굽에 금을 박고 사람도 못하는 호사스런 장식으로 말을 꾸몄습니다. 나보다 더 말을 사랑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봐. 그게 그 당시 부자들의 자랑이었나 봅니다. 한 애마아저씨가 장자에게 찾아와 울면서 호소하는 겁니다. "대체 이걸 어찌 하오리까?" 당시의 명카운셀러 장자는 그 말을 들어줍니다. 무슨 엄청난 괴로움과 슬픔을 겪었기에 그러느냐? 애마엉클은 말씀 하십니다. "제가 넘넘넘 사랑하는 마(馬)님이 한 분 있었걸랑요. 저는 그 말을 귀히 여겨 잘 때도 같이 자고 똥도 만지고 내 먹을 것 아껴서 그에게 다 줬지요. 그런데..." 흑흑흑 우는 아저씨를 달래서 장자는 마지막까지 얘기를 듣습니다. "그런데 어제 말입니다. 이 말이 뒷발로 저를 찼어요. 먹이를 먹는 모습이 하도 이뻐서 그 허벅지를 쓰다듬어 주려고 하는데 제 가슴을 있는 대로 힘껏 갈기지 뭡니까? 이 사랑스런 놈이 이럴 수가 있습니까? 어찌 사랑이 사랑을 몰라주는지요?"
잠자코 듣고 있던 장자는 한 말씀 하십니다. 자신이 죽은 뒤에 마누라가 장례식도 끝나기 전에 바람 피울 걸 예측했던, 그 눈밝은 장자이니, 저 애마남이 지닌 문제의 핵심을 놓칠 리 없었을 겁니다. "그건 말입니다. 당신이 사랑을 잘 이해하지 못한 데서 생겨난 상심입니다. 사랑에는 눈이 없습니다. 사랑에는 기본적으로 눈이 달려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랑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겁니다. 아무리 당신이 사랑 아니라 사랑 할배를 모셔도, 그 뜻이 지극해서 하늘이 경끼를 하더라도, 사랑은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그게 의유소지(意有所至) 애유소망(愛有所亡)입니다. 뜻이 더없이 지극하더라도 사랑에는 늘 끝이 있다. 영원하지 않은 인간, 직선의 끝없는 삶이 아니라 선분의 태엽 길이 만큼만 살아야 하는 인간이 영원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우습느냐. 하지만 인간은 사랑을 하게 되면 너무나 쉽게 사랑이 영원할 거라고 믿어버린다. 믿을 뿐만 아니라, 사랑은 영원하다는 생각을 진리처럼 세상에 퍼뜨리지 않느냐. 그러나 나, 장자가 톡 까놓고 말하노니 아무리 니가 공을 기울여도 사랑은 시든다. 사랑에 봄이 있듯이 사랑에 가을이 있다! 그런데 말이 뒷발 찬 걸 가지고, 장자는 왜 뜬금없이 사랑의 유한을 말했을까요. 사람이 말을 사랑했지 말이 사람을 사랑한 건 아닐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장자는 그 사소한 질문에 자기의 철학을 슬쩍 내놓은 것입니다. "사랑 사랑 사랑 타령 하지 말라. 그건 사그라드는 것이니라."

항룡유회처럼 얄미운 말입니다. 좀 해피한 몽상을 즐기려 하는 때에 저렇게 영감쟁이처럼 나타나서 험한 말을 할 게 무어란 말입니까? 그러나 장자의 저 말은 중요한 효용을 지닙니다. 사랑을 시작할 때의 두려움처럼 사랑이 잘 나갈 때도 그 두려움을 잊지 말란 얘깁니다. 사랑하니 이제 종신보험일 거라고 믿지 말란 얘깁니다. 우린 영원의 기왓장에 나란히 이름 써놓고 맹세했으니 별일 없을 거라고 호언장담하지 말란 얘깁니다. 오히려 그 자랑과 믿음을 덜어 조심조심 사랑을 보듬고 아껴 짧은 인생이나마 그 안에선 롱런하란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아무리 지극하더라도 사랑은 끝이 있다. 그러니 "있을 때 잘하지!" 여인의 저 애교어린 뾰로퉁이, 실은, 장자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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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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