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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엽기란 무엇인가(55)

최종수정 2020.02.12 10:26 기사입력 2014.05.31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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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

낱말의 습격



<엽기>란 말은 이미 반쯤은 죽어버린 사어(死語)가 관뚜껑을 뚫고 다시 걸어나와 도심을 활보하게된 중요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이미 용도 폐기된 말이 전혀 다른 쓰임새로 태어나 새롭게 기승을 떨치는 것이다. 그 낱말은 이십년전에 선정(扇情)을 팔아먹던 주간지에서 손님을 끌기 위한 자극제로 자주 쓰던 용어였으나, 그 방면에서 이 나라의 개화가 급속진행됨에 따라 그 주간지들의 운명과 함께 순사(殉死)하려 했던 언어였다. 이 말은 그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에게는 의미마저 반쯤 지워져 버려, 그것이 되살아나긴 했지만, 무슨 뜻인지 잘은 모르고 그저 좀 야릇하고 음산한 분위기가 재미있는 말로 채택되고 있는 듯 하다. 완전히 다시 태어난 게 아니라, 그저 뉘앙스 몇개만 누더기 옷처럼 걸쳐입고 나온 '강시'같은 낱말이다.
우스개 속에 양념처럼 들어가는 유행어가 된, 엽기라는 말은 지난 날 주간지가 즐겨쓰던 용법(用法)을 추억으로 함유한다. 그래서 그 때묻어보이는 신파적 과장법이 매끌매끌한 요즘 세대의 기호를 자극했으리라. 엽기적인 말 뒤에는 흔히 <살인>이란 말이 따라왔다. 처음엔 분명히 다채로운 빛깔이 있는 말이었을 테지만, 벌써 폐기처분되기 직전인 표현이라 이렇게 의미가 한정되고 용도가 좁혀졌던 모양이다. 엽기적인 살인이란 어떤 것이었던가? 주로 잔혹하고 얄궂고 끔찍하고 무섭고 반인륜적인 살인들이 그 표현 뒤에 줄을 섰다. 가끔은 살인이란 말 대신에 행각(行脚)이란 말이 따라오기도 했는데 이 또한 죽음과 관련이 있는 게 대부분이었다. 이를 테면 시체를 간음하는 것이라든가 시체와 한방에서 오랫 동안 잠자는 것이라든가 이런 종류의 괴이한 행동들을 그렇게 불렀다.

우리가 이 시대에 엽기적이라고 말할 때는 그런 음산함을 채택한 것이다. 그것도 우스개로 조롱하면서 말이다. 뭔지 모르지만 죽음같이 두렵고 절박한 무엇이 서성거리는 얄궂음이란 의미로 전화(轉化)시킴으로써 아주 특별한 과장법이 뒤섞인 뉘앙스를 창출해낸 것이다. 그래 봤자 참 엉뚱하네, 참 특이하네, 참 싱겁네, 참 웃기네, 참 썰렁하네,이런 정도의 의미를 벗어나지 않는다. 저 무겁고 괴상한 말의 때를 벗겨 이렇게 가볍고 세련된 농담으로 만들어낸 이 시대의 취향은 특기할 만 하다. 무엇이든 새로운 걸 위해서는 소재의 출처를 가리지 않는 잡식성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주간지는 엽기란 말과 함께 엽색이란 말도 좋아했다. 두 낱말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엽(獵)은 사냥이란 의미다. 엽기(獵奇)란 기이함,혹은 괴상함을 사냥한다는 말이고 엽색(獵色)이란 색(色), 즉 섹스나 여자를 사냥한다는 뜻이다. 이 말들을 비교적 통용되는 말로 바꿔보면 호기심할 때의 호기(好奇)와 호색한할 때의 호색(好色)이리라. 엽(獵)이란 좋아함[好]이 지나쳐서 병적인 상태 혹은 사회의 지탄이나 우려를 낳을 만한 상태로 잘못 진전된 것을 의미한다. 왜 하필 엽을 썼을까? 인간이 수렵시대를 통과하면서 무의식의 한 부분에 각인해놓은 어떤 컴플렉스가 이런 표현 속에 화석으로 남은 것일까? 사냥의 잔혹과 이기주의와 무차별성을 떠올리면서 이 말에 특별히 그런 기분을 집어넣어 놓은 것일까? <괴상함을 사냥함>이란 원초 의미의 <엽기>는 요즘 우리가 쓰는 엽기란 말 속엔 별로 함유되어 있지 않는 뉘앙스이다.
나는 원초적 의미의 엽기를 깨닫기 위해서는 콜린 윌슨의 <불가사의 백과>란 두툼한 두권의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웃사이더>라는, 문명과 문화에 관한 특이한 진단서를 써서 일약 유명하게 된 그는, 사실 이 엽기적인 저술로도 위대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불가사의 백과에는 우리가 과학이라며 폼잡는 학문이 채 수습하거나 해명하지 못한 지구촌의 온갖 괴이한 일들과 전우주에 걸친 방대한 궁금증들이 널려있다. 그는 그런 것들을 감히 해석하고 분석하려는 태도를 취하진 않는다. 고도의 냉정을 유지하면서 알려진 사례들을 가능한 한 가감없이 나열하는데 공을 들인다. 그는 그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어린아이같은 순수한 눈으로 세상이나 세상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바라보기를 꿈꾸지 않는 한 우리는 그 어떤 것들도 새롭게 발견할 수 없다." 어린아이의 왕성한 호기심으로 세상 구석구석의 믿지 못할 일들을 따라나선 콜린 윌슨이야 말로 엽기(獵奇)의 원조이다.

엽기란 말에는 놀라움과 두려움이 숨어있다. 그것은 엽(獵)보다 기(奇)에 실질적인 액센트를 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엽은 그냥 기를 강조하기 위한 들러리로 내세운 말이다. 그래서 <엽기적인>이란 표현은 <기이한>이란 말로 바꿔도 대체로 통한다. 그런데 엽색이란 말의 사정은 다르다. 거기엔 엽(獵)이라는 말에 아주 맹렬한 비난이 숨어있다. 색을 사냥하다니...나쁜 놈...뭐 이런 기분이다. 색(色)이란 표현 또한, 성적 교합에 대한 불유쾌한 기분과 동물적 야합의 부도덕성을 뉘앙스로 거느린다. 엽색이란 인간의 존엄성과 닿아있는 성적 가치관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며,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라는 인류사의 기본적 성적 기획을 파기하려는 음험하고 파탄적인 행동과 다르지 않다. 그 말은 대체로 상대방인 여성이나 아이를 아무런 저항 능력이나 대처 능력없는 희생양으로 전제한다. 엽색은 그런 무죄한 인류의 일부를 자기의 욕망의 밥으로 삼아 수렵하는 포악한 정글시대의 행동이다. 당연히 이 문명은 그런 일탈과 불법을 엄단해야 한다는 제안까지가 숨어있는 말이 바로 엽색이란 말이다. <엽기>라는 말이 살아나면서도 그 이웃으로 같이 살던 <엽색>이 함께 무덤에서 따라나오지 않은 것은 낱말의 무덤을 최초 발굴한 사람의 불찰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후자의 도덕적 금기에 대한 가위눌림이 그런 유머까지를 용납하지는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나 성(性)이라는 것이 남녀 평등의 "교희(交喜)"라는 이데올로기가 새롭게 확산되고 있는 이 때에 그런 보수적인 비난이 마뜩치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엽기라는 말의 맹랑한 부활은 이 시대의 기분을 말해준다.전기가 들어오면서 밤이 대낮처럼 환해진 시대. 귀신들은 마지막 남은 호롱불과 촛불이 일렁이며 꺼져버린 뒤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이젠 그 자리를 환한 데서도 자주 활약하는 유령들로 대치되었으나 워낙 많이 울거먹어 그 공포감이 시원찮다. 죽음은 이제 눈 앞에서 격리되어 병원 영안실에서 인간의 공포를 소독시킨 채 깔끔하게 처리된다. 죽음을 목도하거나 간접체험할 수 있는 것은 영화 따위의 상상공간, 혹은 컴퓨터 게임이나 가상현실 등의 안락한 공간이다. 죽음은 지극히 안전하면서도 긴장을 유발하는 놀이의 일부로 채택이 되었다. 죽이지 않으면 시시하고 재미없다. 그런 시대가 되었다. 엽기는 그런, 자극을 원하는 세태에 맞아떨어진 달콤한 말이 되었다. 그 뜻이 무엇이었든 상관없다. 어쩌면 무의미인지도 모른다. 다만 죽음과 결부된 섬뜩한 상상력을 얼핏 도발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엽기는 그런 선정적 그리움 속에서 다시 태어났다.

엽기적인 농담이라고 말할 때의 <엽기적>은 그저 썰렁하다는 이 시대를 풍미한 유행어를 한 버전 올린 것이다. 농담이라고 하면 그걸 듣는 쪽이 우스워야 하는데 웃음이 나지 않고 시무룩한 냉담이 유지되는 상황. 그게 썰렁함이다. 농담이 도발해야할 온도까지 올라가지 못해 서로가 어색해있는 상황. 예상된 온도와 실제로 진행된 온도 간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머쓱함을 농담의 주제로 삼는 이 특별한 농담이, <엽기적>이라는 표현 안에 들어온 것이다. 농담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소통불능 혹은 공감을 자아내지 못하는 일방적인 언어배설로 끝나는 현대적인 비극이, 저 음산함과 죽음을 베이스로 깔고 있는 말인 엽기를 올라탔다? 그렇다고 그 농담에 진지한 표정을 깐 것은 결코 아니다. 저 엽기의 투박한 신파를 가장하여 비웃음의 강도를 높인 것일 뿐이다. 썰렁함의 직설에서 시체처럼 싸늘한 기분이나 공포영화의 한 장면같은 끔찍함의 기분을 슬쩍 빌려담은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엽기의 그런 기분은 금세 휘발해버렸다. 그저 썰렁함의 기분만 남아서, 의미없는 입버릇으로 엽기는 정착해가고 있다. 엽기적인 농담이란 말은 상충하는 두개의 낱말이 서로 잠깐 자극을 준 뒤 무표정한 평상어로 굳어버리는 과정을 우리에게 실감나게 보여준다.

하지만 엽기는 엽기적이지 않은 이 시대의 갈증을 말해준다. 1밀리미터의 호기심의 여백도 남아있지 않은 시대. 호기심이 숨어야할 어둠이 너무 환하게 밝아져버린 시대. 그래서 호기심의 뒤에서 인간을 도발하고 단련시키던 두려움의 상상력들이 기진맥진해져가는 시대. 무엇인가 기존의 쓰레기를 뒤져 비틀고 흔들어야만 잠깐의 자극제나마 구경할 수 있는 엽기부재의 시대다. 언어로 보자면, 어떤 과장법들도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는 시대이기도 하다. 엽기 아니라 엽기 할애비가 와도 그저 코웃음을 친다. 전시대의 무거움이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튀어오르는 현상들. 세상의 모든 심각함과 진지함이 우스개 속에 뒤엉켜 함께 흘러가버린다. 엽기는 우리 시대의 불감증, 깊이 침윤된 집단정신병을 알리는 언어 증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잠깐이면 스쳐 지나갈 유행어일텐데, 문화분석가들의 입방아에 무모한 품을 보태는 일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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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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