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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팽목항에 닻내린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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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혜영 기자] "3반 OO엄마(아빠)에요. 애들 살았을 때 서로 봤으면 좋았을텐데…"

부모의 이름은 들리지 않았다. 모두 자신을 누구의 엄마, 아빠로 소개했다. 하늘 한 번, 바다 한 번 바라보며 새끼의 얼굴을 떠올리던 엄마 아빠는 이내 서로의 손과 어깨를 감싸 안으며 통곡했다.
아이들의 이름을 10번만 불러보자는 제안이 나오기가 무섭게 부모들은 마지막 남은 힘을 모두 쥐어짜내 목청껏 소리쳤다. 일부 가족들은 아직도 현실이 믿기지 않는 듯 발을 구르고 가슴을 내리 치며 바닥에 주저 않았다.

1일 오후 세월호 침몰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유가족 160여명이 전남 진도의 팽목항을 다시 찾았다. 자식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실종 학생의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자식 잃은 아픔에 몸 조차 가누기 힘들어 보이던 가족들은 실종자 가족에게 "어떻게 지냈냐 ? 식사 하시고 힘을 내야 한다"며 애써 감정을 억누른 채 위로의 말을 건넸다.
"우리 애만 먼저 찾아서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인 유족 앞에 실종자 가족은 "여기까지 다시 와 주셔서 고맙다"며 따뜻한 포옹으로 답했다.

진도체육관에서 함께 있던 같은 반 학생의 부모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OO이네가 안보인다. 밥 한 술 못 뜨던데 바다 쪽에 나가있나보다"며 팽목항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실종자 가족이 지내는 팽목항을 다시 마주한 유족들은 정부에 대해 또 한번 울분을 터뜨렸다. 유족들은 '자식 낳으라 하지말고 내 새끼 살려내라' '정부는 살인자. 하루빨리 애들을 구하라'며 정부를 비판했다.이어 "우리 아이들을 죽인 정부는 각성하라" "첫번째도 구조, 두번째도 구조. 마지막 한명까지 변명없이 찾아내라"고 외치며 행진했다.

한 유족은 "적어도 단원고 실종자 부모들을 같은 반끼리 분류해서 같이 있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다 뿔뿔이 흩어지게 해 놓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며 한숨을 내뱉었다.

헛점 투성이 구조와 수색작업, 날로 커지는 의혹들,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의 분노와 절규에 공감하지 못 하는 정부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들의 가슴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찢겼다.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한 정부의 자리를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이 서로 채워주고 있던 대한민국의 비참한 현실이 팽목항에서 절규와 통곡이 돼 울려 퍼졌다.



이혜영 기자 itsm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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