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참담해 거론조차 힘든 '세월호 침몰사고'로 세상은 혼돈에 빠져 들끓고 사람들은 가눌 길 없는 분노와 슬픔, 감당하기 힘든 죄책감과 무력감에 말을 잃고 고개를 숙였다.
과학기술과 물질문명이 발달하고 세계화가 진전된 현대사회의 한 특질은 '위험사회'로 요약된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인류가 추구해온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에서 양산된 가공할 만한 '위험'이 현대사회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의 이론은 '파행적 근대화' '비정상성의 일상화' '비정상적 발전' '왜곡된 발전' 등의 결과라는 혐의를 뒤집어 쓴 채 끝없이 반복되고 있는 '한국적 재난'의 특수성과 만나 '이중 위험사회' '복합 위험사회' '후진적 위험사회' 등으로 구체화된다.
금융이론에서 위험(risk)은 '측정 가능한 불확실성'으로 정의되며, 금융시장에서 상품화된다. 불확실성이라는 추상의 세계는 통계적 확률모형을 통해 수치화된 리스크로 변해 금융상품가격은 물론, 모든 경제행위의 가치 결정기준이 되는 '위험과 수익의 선형적 보상관계'를 완성한다. 이 명쾌하고 객관적인 계량화 과정에서 인간의 탐욕과 공포, 일탈의 충동, 제한된 이성, 상식과 보편, 도덕률, 인지오류 등은 확률분포라는 좁고 어두운 틀 속에 유폐돼 고려와 관심과 작용을 상실한다.
확률개념은 일상의 거의 모든 영역에 적용된다. 한때 마라톤 붐이 일어 대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사망사고가 자주 일어나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주자의 책임을 강조하기도 하고 주최 측의 안전대책을 촉구하기도 하며 건강검진의 중요성을 일깨우기도 했지만 모두 사후적이다. 사고를 당할 가능성은 흔히 확률(이 경우 사망률)로 나타난다. 미국의 한 통계에 따르면 마라톤 대회 참가 중 사망률은 5만명당 1명꼴이며, 풀코스를 4시간 안에 완주하는 사람의 사망률은 20만명당 1명 꼴이라고 한다. 확률로 따지면 지극히 낮기 때문에 마라톤 대회에서 사고사는 돌연사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모든 사고사에는 엄격한 인과율이 작용한다. 사고의 발생가능성이 낮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준비 없이 자주 대회에 출전하고, 무리하게 주행하는 사람에게 동일한 확률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확률은 그저 '산술적 평균'일 뿐이다. 낮은 확률은, 그 결과가 사망률처럼 불리한 것인 경우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나만은 예외'라는 근거 없는 확신과 함께 '설마'라는 무관심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복권당첨처럼 유리한 결과를 초래하면 '혹시'라는 막연한 기대에 매달리게 한다. 흔히 확률은 통계에 기초한 '합리적 우연'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우연은 때에 따라 냉혹한 필연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이미 예고된 위기를 당하고도, 낙관과 체념, 설마와 혹시 사이에서 번민하고 방황하는 순간 삶과 죽음이 교차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맹자가 이르기를 '사람은 항상 과오를 범한 뒤에야 고칠 수 있고,…안으로 법도를 지키는 세신(世臣)과 보필하는 선비가 없고, 밖으로 적국과 외환이 없는 국민의 나라는 항상 망한다. 그런 뒤에야 우환 속에서 살고 안락 속에서 죽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人恒過, 然後能改, (...), 入則無法家拂士, 出則無敵國外患者, 國恒亡. 然後知生於憂患而死於安樂也)'라 했다. 엄밀히 말하면 삶의 모든 순간이 위험에 노출된 '위험사회'를 살아가면서 되풀이되는 사고를 당하고도 고치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이기적 편의로 해석한 알량한 확률에 기대고 망각으로 자위하며 지내 온 우리에게 전국(戰國)의 난세를 온몸으로 견디며 살다간 성현의 부르짖음은 처연하고 통렬하다. 안락 속에서 이미 죽고 우환 속에서도 살지 못할 것인가. '설마'에 안주해 '혹시'를 외면할 것인가. 그 선택은 산 자의 몫이다.
피지도 못한 꽃들이 맹골수도에 스러진 갑오년 대한민국에 봄날은 없다. 곧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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