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상품이라고는 은행예금과 적금밖에 모르던 그가 난생 처음 펀드에 가입한 때는 30년 다니던 건설회사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명예 퇴직한 2007년 가을이었다. 저축의 시대는 가고 투자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세상의 모든 입들이 떠들어 대던 때였다. 때마침 대박 펀드를 잇달아 터뜨려 펀드운용의 귀재라 불리는 증권회사 회장이 '통찰력'이라는 뜻의 '인사이트 펀드'를 출시했다. 정기예금금리가 연 6%대였는데 연 20%라는 경이적인 목표수익률을 제시했다. 저금리시대에 벼락같은 축복이었다. 장사진 속에서 차례를 기다려 번호표를 받고 퇴직금의 절반인 1억원을 펀드에 넣었다. 4조7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자금이 몰렸다는 소식에 그는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그 '통찰력'이 '분산투자'라는 펀드운용의 기본원칙을 어기고 중국에만 집중된 것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가입 이후 펀드의 수익률은 정점을 찍고 추락하는 중국 증시에 발맞춰 하락궤도에 오차 없이 진입했다. 시간이 지나면 반등하리라는 막연한 기대는 속절없이 무산됐다. 1년을 버텨 인내가 바닥을 보일 때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고 전 세계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공포에 질려 환매하니 정확하게 반 토막이 났다.
두꺼운 안경 너머로 체념의 눈빛이 흐렸다. 나아갈 수도 물러날 수도 없는 낭패감이 얼굴에 짙게 배였다. 의사봉을 든 손이 가늘게 떨렸다. 2012년 미국의 금융지 글로벌파이낸스가 '세계 최악의 중앙은행 총재'로 선정해 국제적 수모를 겪은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이 의사봉을 세 번 기계적으로 두드렸고 6명의 금통위원은 침묵으로 화답했다. 기준 금리가 8개월 연속 동결되는 순간이었다. 의사봉은 매양 동결타령이나 해도 높은 연봉을 챙겨주는 도깨비 방망이 같았다. 올 들어 20% 삭감된 한국은행 총재의 연봉은 2억8000만원, 금통위원의 연봉은 2억5000만원이다. 폭설에 이은 한파로 세상도 얼어붙었다.
사상 최대 규모의 개인 신용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신용카드회사 홈페이지에서 확인해보니 모두 16가지 정보가 유출됐다. 다 털리고 발가벗겨진 느낌이 들었다. 아득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이 사태를 수습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부총리는 책임을 묻는 피해자들을 뜬금없이 '어리석은 사람들'로 몰아붙여 부아를 돋우고 염장을 질렀다.
정병선 성균관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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