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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馬)의 해, 말(言)의 해]양파.고구마도 "미워한다" 말하면 시드는데…'당신 혀 끝의 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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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폭력도 폭력이다...무심코 던지는 비아냥도 언어폭력

[말(馬)의 해, 말(言)의 해]양파.고구마도 "미워한다" 말하면 시드는데…'당신 혀 끝의 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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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최근 한 방송사에서 '말의 힘'에 대한 실험을 했다. 두 병에 밥을 똑같이 담은 다음, 4주 동안 한 병에는 '고맙습니다'라는 스티커를 붙여놓고,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좋은 말만 들려줬다. 다른 한 병에는 '짜증나'라는 스티커를 붙여놓고, 나쁜 말만 골라서 들려줬다. 4주가 지나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고맙습니다' 병에는 하얀 곰팡이가 예쁘게 자랐는데, '짜증나' 병에는 거무스레한 곰팡이가 악취를 피우고 있었다.

'밥' 뿐만이 아니다. 양파, 감자, 고구마를 대상으로 한 실험도 있다. 두 양파를 컵에 담아놓고, 한 쪽에는 사랑한다는 말을 계속 하고 나머지에는 미워하다는 말을 계속 하면, 똑같은 조건에서도 결국 사랑받지 못한 양파는 시들어버리고 만다. 우리가 하는 말에는 파동과 주파수, 감정의 진동이 있어서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주변에 영향을 주게 된다. 하물며 말 못하는 식물이나 밥도 부정적인 말에 취약한 모습을 보이는데, 사람은 두말할 것도 없다. 말로 인한 폭력은 신체적 폭력만큼이나 치명적인 상처와 후유증을 남긴다.
◆ 학교에서, 가정에서, 일상화된 언어폭력 = 언어폭력은 가정에서부터 학교, 군대, 직장, 인터넷 등 우리 생활에 일상화돼있다. 언어폭력은 말하는 사람의 언어적 표현이 듣는 사람에게 매우 폭력적이거나 공격적인 느낌을 주게 됨으로써 상대방의 자아 개념을 손상시킨다. 흔히 성격 공격, 능력 공격, 배경 공격, 외형 공격, 저주, 희롱, 조롱, 협박, 욕설 등이 포함된다. 무의식중에 상대방을 비아냥거리거나 멸시하는 내용의 말도 언어폭력에 해당한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성인 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정 폭력을 경험한 사람은 46%이며, 이 중 말로 상처를 입히는 언어폭력이 37%로 가장 많았다. 남편이 아내에게 술 마시고 폭언을 하거나, 말로 위협을 가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대부분 '집안일을 알리는 게 창피해서', 혹은 '별로 달라질 게 없다'는 생각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특히 결혼이주여성들은 이혼을 하게 될 경우 신원보증이 어렵고, 법률 서비스에도 무지해 이런 폭력에도 참고 사는 경우가 많다. 세계보건기구(WHO) 조사에서도 전 세계 여성의 3분의 1이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에게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부모도 문제다. 여가부 조사에서는 부모 두 명 중 한 명 꼴로 자녀를 폭행하는 걸로 나타났으며, 때린다고 위협을 가하거나 욕설을 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다. 문제는 이런 가정 내의 폭력은 '폭력의 되물림'이라는 악순환을 낳는다는 것이다. 강소영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은 '학교폭력 가해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가정적 요인 연구'에서 "학교 폭력 가해학생의 가정 분위기는 잦은 언어폭력에 노출된 경우가 34.3%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중에서도 언어폭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다. 교육부가 지난해 발표한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 피해 유형으로는 언어폭력이 35.3%로 가장 많았고, 이어 집단 따돌림 16.5%, 폭행 및 감금 11.5% 등의 순이었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이어지면서 습관적으로 욕설 등을 사용하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 굳이 욕설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놀리거나 무시하거나 하는 말 등은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두고두고 상처로 남게 된다. 한 학교폭력 상담 사이트에서는 "남학생들이 의자를 차면서 '냄새난다', '못생겼어'라는 말을 해서 울었다"거나 "앞에 앉은 아이가 제 이름에 안좋은 욕을 붙여서 같이 불러서 수치스러웠다" 하는 사연이 수두룩하게 올라와있다.

2011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가 중고등학생 일부를 대상으로 옷에 소형녹음기를 넣어 조사한 결과, 학생 1명당 평균 194.3회의 욕설을 내뱉었으며, 1시간에 49회, 75초마다 한 번씩 욕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의 욕을 보면 "X나 재수없어" "뭐 병신새끼야? 처맞을래?" "닥쳐. 야리지마(째려보지 마)" "깝치고 있네(까분다). 죽여버린다" 등 입에 담기도 힘든 욕들이 대부분이었다. 대구에서 중학교 3학년을 가르치고 있는 한 교사는 "학생들이 또래와 어울리기 위해 혹은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욕을 쓴다"며 "학생들에게 자신이 하는 욕의 뜻을 알려주면 조금 조심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 사회적으로 언어폭력의 심각성 인식해야 =언어폭력은 모든 폭력의 시발점이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싱가포르의 한 광고회사는 언어폭력의 심각성을 경고하기 위해 제작한 광고에서 "당신의 입이 때로는 주먹이 될 수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말 한 마디가 상대에겐 큰 상처가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말의 폭력성에 대해 둔감하다. 사회적으로도 이 같은 심각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여전히 잘못된 말들이 견제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회적으로 최근 폭언, 망언 등이 고삐풀린 말처럼 잇달아 터져 나오는 것도 말에 대한 견제 및 대응 장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말을 자신의 감정이나 기분을 한 번 내뱉고 마는 배설 수단으로 생각하는 인식도 문제다.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악성 댓글과 게시물들이 그 증거다. 한 네티즌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입관식 사진을 홍어와 택배에 비유하며 악의적으로 비하해 최근 고소당했다. 무특정 다수를 대상하는 방송에서조차 "사망자가 모두 중국인이어서 다행" "싸가지 없는 며느리" "후레아들XX" "각선미가 아주 예쁘다" 등의 막말을 쏟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따르면 종편프로그램에 대해 품위유지와 명예훼손 금지, 방송언어 조항에 관련된 제재 건수는 2012년 30건에서 2013년 54건으로 크게 늘었다.

"내 언어 능력의 한계가 곧 내 세계의 한계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말은 말하는 사람의 생각과 세계를 반영한다. 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말 역시 그 사회의 수준을 대변한다. 폭언과 욕설, 막말과 망언이 넘치는 사회는 그만큼 폭력적이고, 억압적이며, 비민주적일 수밖에 없다. 말을 신중하고, 정확하며, 올바르게 사용해야 하는 이유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우리 사회에는 '언어의 암시장'이 너무 크다. 음지에서 출처도 모르게 양산된 말들이 비일비재로 쓰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지금까지 내가 평생 한 말로 건물을 짓는다면, 나는 지금 성을 쌓고 있을까 초가집을 짓고 있을까. 사회구성원들이 한 번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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