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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馬)의 해, 말(言)의 해]금배지님, 言治부터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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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살고 말로 죽는 정치인의 말

[아시아경제 양성희 기자] 직업 정치인들에게 말은 곧 ‘밥’이다. 대의민주주의 제도 아래서 직업 정치인들의 밥줄은 곧 ‘표’이고 표를 결정짓는 유권자와 정치인 사이 소통의 도구로 가장 먼저 쓰이는 건 말이기 때문이다. 1992년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빌 클린턴의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처럼 잘 지은 캐치프레이즈 하나가 유권자의 마음을 뒤흔들어 당락을 결정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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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직업 정치인들이 모여든 여의도는 말로 살고 말로 죽는 동네다. 말실수 한 번에 당에서 퇴출당하고 의원직까지 날아가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대 법대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된, 한마디로 ‘잘 나가던’ 강용석 전 의원은 2010년 한 술자리에서 아나운서 모욕 발언을 해 홍역을 치렀다. 그는 당에서 제명됐고 이후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의 병역 의혹을 제기했다가 의원직에서도 물러났다.
정치인에게 있어 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윤희웅 민정치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은 “정치인의 말은 정치인 그 자체이며 정치생명과 직결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치는 말의 예술이며 정치는 100% 말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갈등을 해결하는 역할을 해야 할 정치권이 ‘말’로 갈등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며 이는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아닌 정치 파괴범과 같은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는 그의 정치철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에 울림이 크고 무겁다. 막스베버는 그의 저서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이 갖춰야 할 자질로 열정과 책임감, 그리고 균형감각을 꼽았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전부 ‘말’에 적용해볼 수 있다. 열정만 앞서 포퓰리즘에 입각한 말을 남발해서는 곤란하고 책임감과 균형감각이라는 덕목을 함께 갖춰야 말다운 말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인문교양학부)는 “정치인들의 말은 항상 책임감을 담보해야 한다. 뱉은 말은 전부 정치인 스스로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말을 정확히, 또 적확히 사용하며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할 정치인들이 ‘말’ 때문에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곤 한다. 말이 그들의 신뢰도를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2월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의 5.6%만이 국회를 신뢰한다고 응답했다. 다른 나라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해 말 미국의 여론조사업체 갤럽이 성인 1031명을 대상으로 직업별 신뢰도 조사를 한 결과 정치인이 로비스트와 더불어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의 말도 연일 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불통 논란’에 휩싸인 박근혜 대통령이 소통이란 단어를 본래 뜻에 부합하게 쓰고 있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잇따르기도 한다. 소통의 사전적 의미는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다. 지난 6일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소통에 대해 운을 뗐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우리 사회를 보면 불법으로 막 떼를 쓰면 적당히 받아들이곤 했는데 이런 비정상적인 관행에 대해 원칙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소통이 안 돼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소통을 위한 전제조건은 모두가 법을 존중하고 지키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법이 적용·집행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원칙대로 하는 것이 불통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랑스러운 불통”이라고 한 말과 맥락을 같이 한다.

박 대통령의 사례처럼 말을 정확하고 적확하게 사용하지 못해 질타를 받는 경우와 더불어 무책임한 말을 남발해 정치 냉소주의를 불러오는 사례 또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무책임한 말은 선거 때 폭증한다. 표에 눈이 먼 정치인들은 ‘산타’가 된 심정으로 유권자들에게 선물 보따리를 늘어놓지만 정작 이행되는 공약은 그리 많지 않아 결국 그들은 거짓말쟁이가 돼버린다. 지난해 5월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19대 국회의원들의 총선 공약 이행률을 분석한 결과 전년도 기준 10건 중 1건만이 이행 완료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18대 국회의원 총선 공약 이행률은 35%를 기록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제18대 대선 경제민주화 공약은 10개 중 2개만이 이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박근혜정부의 핵심공약인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 이행률은 22%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치권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데 한몫하는 건 정치인들의 막말 퍼레이드다. 여야 할 것 없이 경쟁하듯 막말을 쏟아내는 풍경은 이미 익숙하다. 막말이 워낙 일상화되다 보니 한 달만이라도 하지 말자는 제안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안철수 무소속 의원은 지난 2일 새정치추진위원회 회의에 출석해 “1월 한 달이라도 막말 없는 정치의 모습을 약속하자”고 제안했다. 지난해 논란을 불러온 홍익표 민주당 의원의 ‘귀태’ 발언처럼 막말 사례는 일일이 다 언급할 수 없을 만큼 많다. 막말 행태를 근절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선 정치권 안팎에서 논의가 활발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대책은 없다. 이노근 새누리당 의원이 이른바 ‘국회의원 막말 금지법안’을 지난해 7월 대표 발의했지만 아직 계류 중이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전문가들은 결국 유권자들의 신중한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인들의 막말 등은 효과가 있어서 계속되는 것이다. 핵심지지층에겐 ‘표’로 돌아오기 때문”이라며 “결국 유권자들의 판단에 달렸다. 막말을 법안으로 규제하기보다는 유권자들이 벌을 주는 쪽으로 근절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양성희 기자 sungh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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