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번역가로 돌아온 소설가 배수아

[아시아경제 이윤주 기자] "번역가는 무대에 선 배우와 같아요."


번역가는 흔히 원작 뒤에 숨어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배수아는 번역이라는 작업을 과감히 무대에 올린다. 등단한 지 20년 넘은 소설가이자 꾸준히 독일어 작품을 번역해온 그에게 번역이란 무엇인지 물었다.

"적어도 '문학' 작품을 번역한다는 것은,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데 그치는 기능적인 작업이 아닙니다. 예컨대 하나의 희곡이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듯이, 원작은 번역가의 몸을 지나 독자에게 도착하니까요."


이견이 있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 덧붙이면서도, 배 작가는 번역이 '창작'의 영역과 닿아 있다고 말했다.

"원작자의 텍스트와 그 언어를 알지 못하는 독자 사이에서, 번역가만이 느끼는 환희가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숨겨진 사람이지만 번역자는 한 작품의 첫 번째 독자이자 가장 적극적인 독자니까요. 이쪽 언어에서 저쪽 언어로 '다리'를 건너는 사람만이 아는 비밀스러운 과정은 아주 매혹적입니다. 그것은 창작의 기쁨 이상이죠."


배수아는 최근 세계문학의 지평을 다른 시선에서 조명하기 위해 기획된 시리즈 '제안들'(워크룸프레스)의 1권을 열었다. 이 시리즈는 기존의 세계문학총서들이 놓친 낯선 작가, 또는 유명한 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에 주목한다. 그녀가 선택한 작가는 고전문학깨나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알 만한 '변신'을 쓴 프란츠 카프카다. 카프카가 자면서 꾼 꿈에 대한 메모, 일기, 편지 등 사적인 기록을 엮었다.


[티타임]"번역은 원작자와의 사랑…창작 이상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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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한 구절에 얽힌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배 작가의 표정은 한껏 상기됐다. '그녀의 베일이 바람에 날리며, 그녀는 발을 옮겼다'라고 옮겼더니 편집자가 익숙하지 않은 문장이니 더 '편안하게' 바꾸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단다. 그래서 그 문장은 '베일을 바람에 날리며 그녀는 걸음을 옮겼다'가 되었다. 후자가 문법에 더 충실한 문장인 것은 맞지만 배 작가는 이게 두고두고 아쉽다고 했다.


"본디 문학의 모든 문장은 리듬을 갖습니다. 그 리듬을 다른 언어에 어떻게 싣느냐, 이건 궁극적으로는 문법을 넘어서는 영역이에요. 카프카의 텍스트는 그런 점에서 더없이 풍부하고 음악적이죠. 원작의 문장 자체에 '변주'할 수 있는 여지가 희박한 경우도 있는데, 번역가로서 그런 문장을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구글 번역기도 할 수 있는 일일 테니까요."


카프카의 연인으로 알려진 밀레나 예젠스카는 카프카의 작품을 번역하다 그와 사랑에 빠졌다. 번역을 하다 연인이 되어버린 사건, 그 자체가 번역의 은유라고 배 작가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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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강한 결속이 또 있을까요. 한 사람이 풀어놓은 언어를 번역자는 그 누구보다 강렬히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니까요.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 그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겠어요?"


카프카의 연구자나 전공자, 혹은 카프카 학회의 회원도 아닌, 오직 단 한 명뿐인 카프카의 번역자가 되고 싶었다는 그녀의 얼굴에 '목하 열애' 중인 여인의 미소가 떠올랐다.


이윤주 기자 sayyunj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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