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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배원들이 '공포의 빨간 자전거'에 떠는 사연

최종수정 2013.12.08 08:40 기사입력 2013.12.08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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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 중노동 사실 확인된 직후 정부 '행복배달 빨간자전거 사업' 발표..."일 더하라"에 집배원들 "죽으라는 얘기" 반발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빨간 자전거'는 오토바이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하기 전인 1980년대에만 해도 우편 집배원들의 발과 같았고, 국민들에게는 까치처럼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존재였다. 집배원들은 우편물이 가득 담긴 배낭을 빨간 자전거에 싣고 집집마다 '행복'을 배달해왔다. 군대 간 형의 편지를 기다리던 동네 꼬마들은 동네 어귀에서 서서 집배원의 빨간 자전거가 나타나기 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빨간 자전거가 집배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와 관련해 지난 2일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는 집배원들의 열악한 근무실태를 담은 보고서를 만들어 공개했다. 집배원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이 일반 노동자 정규직 평균 근로시간인 42.7시간에 비해 20시간이나 웃도는 64.6시간에 달한다는 조사결과였다. 집배원들은 특히 설, 추석, 선거기간 등엔 하루 15.3시간, 주 85.9시간이나 근무하는 등 장시간 중노동에 시달렸다. 한 곳 이상의 부위에 근골계 증상을 가진 '증상 호소자'가 74.6%, 당장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질환의심자'가 43.3%나 됐다.
실제 최근들어 집배원들이 근무 도중 사고ㆍ질병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18일 공주유구우체국의 오모(31)씨가 배달업무 중 심근경색으로 사망했고, 용인송전우체국 소속 김모(46)씨는 업무 중 오토바이 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뒤 지난달 24일 숨졌다. 또 충남 당진우체국 기능직 공무원인 이모(54)씨가 지난달 24일 업무 중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이씨는 고객을 응대하는 감정노동으로 업무상 스트레스가 심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집배원들의 업무부담 경감과 근로시간 단축 등 근무 여건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지난 3일 성명을 내어 "집배원의 사고 및 사망재해, 열악한 노동조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 수립에 적극 임하라"고 촉구했다.

그런데 이같은 조사 결과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뜻밖이었다. '검토해보겠다', '조사해보겠다'는 정도도 아닌 "집배원들에게 일을 더 시키겠다"는 계획이 발표된 것이다.
이 조사 결과 발표 다음날 아침 우정사업본부와 안전행정부는 '행복배달 빨간 자전거' 사업을 시작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의식을 잃은 할머니에게 집배원이 심폐소생술을 해준 사례 등을 내세우며 전국 1만6000여명의 집배원을 활용, 농어촌 주민들을 위해 민원ㆍ복지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즉 작업 특징상 가가 호호 방문하는 집배원들에게 독거 노인 등 취약계층의 생활 실태 파악, 재해 및 범죄 예방 등의 활동을 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집배원들은 주로 배달을 하면서 오토바이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빨간 자전거'라는 사업명이 붙은 것은 "정감이 더 간다"는 이유였다.

정부의 이 같은 정책은 박근혜 대통령의 한마디에서 비롯됐다. 박 대통령이 취임 초 농림축산식품부 업무보고에서 "집배원들을 농어촌 복지 전달에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안한 것을 구체화한 것이다. 정부는 이 사업을 부처 간 협업이라는 취지를 잘 살린 '정부 3.0'의 대표적 사례로 내세우고 있다.

이러자 집배원들은 '빨간 자전거'만 봐도 공포스럽다는 반응이다. 사실 자전거는 예전에 사용하긴 했지만 엄청난 품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려 오토바이가 도입되면서 동시에 퇴출된 것으로 집배원들 입장에선 안 그래도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물건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중노동에 시달린다"는 집배원들의 호소를 접하자 마자 '빨간 자전거' 사업을 내밀면서 "일을 더하라"고 나섰으니 공포에 떨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선 집배원들 사이에선 안 그래도 과중한 업무 부담에 힘든 상황인데 근로 여건 개선은커녕 '가욋일'까지 맡기려 하냐는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또 평상시에도 집배원들이 실천하고 있는 선행을 정부의 치적으로 삼기 위해 겉으로만 포장을 그럴싸하게 해서 '생색'을 내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이와 관련 현장 집배원들의 단체인 '집배원 장시간ㆍ중노동 없애기 운동본부'는 지난 6일 성명을 내 '행복배달 빨간 자전거'사업에 대해 "현재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집배원 사망재해에 대한 언론의 대대적 질타를 덮으려는 의도에서 나온 언론플레이"라며 빨간 자전거 사업은 원래부터 집배원들이 자발적으로 해오던 미담 사례를 모아서 발표한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이 단체는 이어 사망 집배원 유가족에 대한 사과와 충분한 보상, 집배원의 장시간 고강도 노동 해결을 위한 인력 충원 및 과도한 물량 제한 등의 조치를 촉구했다.

한편 안행부는 이 사업에 대한 비판 여론에 대해 해명 자료를 내 "농어촌 지역에 한정하여 추진하며 집배원 노조와도 이미 상의한 사업"이라고 밝혔다. 안행부는 "농어촌 지역은 도시 지역에 비해 우편 물량이 상대적으로 적고 집배원에게 부담되는 업무부하가 크지 않다"며 "집배원들의 1인 일평균 배달물량(2012년 기준)이 대도시는 1471통, 중소도시 1137통인 반면 농어촌은 734통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안행부는 또 "이 사업 추진을 위해 전국우정노동조합과 사전협의를 거쳤다"며 "기존 집배원 중심의 봉사모임인 '365봉사단' 및 일부 우체국과 지자체 간 협약으로 제공하였던 민원ㆍ복지서비스를 더욱 체계적ㆍ전국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것으로, 향후 유공자(집배원)에 대해서는 표창 등 인센티브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에 불구하고 집배원들은 "농촌이 배달 수는 적지만 이동거리가 훨씬 길어 근무 시간ㆍ강도는 비슷하다. 우정노조도 현장 집배원들의 의견 수렴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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