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300만원 보장'에 혹했다가…무점포 창업 피해 여전히 기승
[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 버스 운전을 하다가 사고로 수입이 끊긴 김모(남·인천)씨. 지난 7월 케이블TV를 보다가 '점포가 없어도 월수익 300만원을 보장한다'는 냉동 피자 체인 광고에 혹해 창업을 결심했다. 부장이라는 사람이 가맹비(980만원)를 내면 부평에 지역 판매 독점권을 준다고 했다. 김씨는 집을 담보로 800만원을 대출받아 덜컥 가맹 계약을 했다. 이후 회사 측은 600만원을 더 내면 인천 동구·남구, 강화 지역까지 독점 판매권을 넘겨준다고 김씨를 꼬드겼다. 계약금과 계약유지금을 내고 여기에 초도 물품 비용, 냉동고를 구매하고 나니 총 2000만원이 들었다. 그런데 가맹비를 받아 챙긴 회사는 사후 관리를 전혀 해주지 않았다. 더구나 부평 지역의 독점 판매권을 준다고 해놓고 알고 보니 다른 업자가 이미 영업 중이었다.
무점포 창업의 피해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광고에 현혹돼 무점포 창업에 뛰어들었다가 생활고에 빠진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제2의 묻지마 창업'이 서민을 두 번 울리고 있는 셈이다.
16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주최한 '사기성 무점포 창업 간담회'에 참석한 피해자들은 광고 내용만 철석같이 믿고 무작정 창업에 뛰어들었다가 뒤늦게 가맹비만 날렸다고 호소했다.
무점포 창업 피해자들이 모여 만든 카페지기 K씨는 "피해자 수가 1만명 가까이 된다"고 말했다. 약 1000만원의 가맹비를 납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피해 금액 규모만 1000억원에 달한다. 이 관계자는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포기한 피해자 수까지 합치면 피해자 규모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무점포 창업은 점포를 별도로 두지 않고 직접 영업을 뛰어 수익을 올리는 사업이다. 냉동 피자·햄버거 등 물건을 대주는 가맹점으로부터 지역 독점 판매권을 넘겨받은 대리점이 이 지역에 있는 슈퍼마켓, 미용실 등에 물건을 팔아 수익을 내는 구조다. 영업 초기엔 영업에 서툰 창업자들을 배려해 가맹점이 위탁 판매점 20곳을 의무적으로 섭외해준다.
하지만 이날 모임에 참석한 피해자들은 가맹점은 꾸준히 거래를 이어 나갈 수 있는 위탁 판매점을 소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위탁 판매점에 샘플 몇 개 두고 가는 식으로 일을 끝낸다고 꼬집었다. 피해자 중 한 명은 "위탁 판매점을 소개받기로 한 날 나가 보니 가맹점 직원이 14군데는 이미 사인을 다 받아놓고 나머지 6곳에 가서는 제품 샘플 2개만 놓고 하나는 시식해 보라고 하고 나오는 게 다였다"고 말했다.
관련 업계와 전문가들은 '무점포 창업'의 취지에는 문제가 없지만, 악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경준 변호사(경실련 시민권익센터 운영위원장)는 "자본금이 없는 창업자가 투자자(대리점)들을 모아 사업 아이템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사업의 취지는 문제가 없다"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사업의 취지가 변질되고 투자자들만 모집해서 가맹비만 받아놓고 사후관리는 나 몰라라 하는 식으로 사업이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특히 이들 창업자들은 불리한 계약조건에 신음하고 있다. 창업자 B씨는 "애초부터 가맹점이 가맹비만 받아 챙길 목적이었지, 대리점의 성공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B씨는 "계약서에 계약기간은 평생이라고 적혀 있지만 두 달 이후 한 품목당 1000개 이상 못 팔면 계약해지라고 쓰여 있다. 그래놓고 가맹점에선 일주일에 물건을 150개만 보내준다. 이를 한 달로 계산하면 600개다. 이 600개를 다 팔아도 계약해지를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더욱이 해당 업체의 경우 주문을 월요일, 목요일 각각 3시간만 받는다. 대리점에 물건이 언제 동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일주일에 6시간만 주문을 받는다는 것도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피해자들이 문제의 가맹점으로 지적한 K사는 이와 관련해 "아무 문제가 없다. 현재로선 정확하게 답변하기 어렵다. 담당자가 오면 다시 연락주겠다"며 즉답을 회피했다.
허위 과장광고도 피해를 부추기는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됐다. 피해자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것은 여과 없이 방송되는 케이블TV 광고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C씨는 "지역 방송의 시사교양프로그램에서 가맹점주라는 사람이 나와서 성공사례를 이야기하기에 열심히만 하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 줄 알았다"며 "주변에 열이면 아홉 명은 창업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이런 광고를 통해서다. 프랜차이즈를 빙자한 광고를 제재해야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다만 과대 허위광고를 규제할 방안이 현재로선 전무한 실정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표시광고법 위반에 따른 고발조치를 할 수 있으나 이는 이미 피해자가 발생한 뒤 이뤄지는 사후대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설사 고발을 하더라도 피해자가 원하는 금전적 보상은 이뤄지지 않는다.
억울함을 호소할 창구도 마땅히 없다. 무점포 창업으로 인한 피해자 숫자와 피해액 규모를 공식화한 기관이 없다는 것은 거꾸로 이 문제에 대해 관심 갖는 정부기관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구나 무점포 창업의 경우 프랜차이즈 가맹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법의 구제를 받을 수도 없다.
피해에 따른 보상을 받으려면 민사소송을 할 수밖에 없는데 서민이 대다수인 피해자 개개인이 민사소송에 소요되는 변호사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안 된다고 피해자들은 말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현재 무점포 창업으로 금전적 손해를 본 피해자들 20여명은 집단으로 민사소송을 준비 중이다.
홍미미 가맹거래사(경실련 운영위원)는 피해자의 의견에 공감하면서도 충분한 사전 조사 없이 창업에 뛰어든 것은 일정부분 당사자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매출 순이익에 혹해서 뛰어드는 사람이 많은데 창업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조금이라도 습득한 사람이라면 창업해서 월 3%를 버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안다"며 "창업을 결정하기 전에 사전조사를 꼼꼼히 해야지 검증되지 않은 광고에 무턱대고 맞장구를 쳐주면서 이런 사기업체들이 기승을 부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