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곤충은 거위 목처럼 긴 주둥이를 송곳이자 톱으로 쓴다. 도토리에 구멍을 뚫고 알을 낳은 뒤 그 도토리가 달린 가지를 자른다. 도토리거위벌레는 점점 더워지는 기후를 오히려 반길 듯하다. 이 벌레는 지구온난화의 수혜종이기 때문이다. 알에서 부화한 애벌레는 도토리를 파먹으면서 자란 뒤 땅속에서 월동하는데, 겨울이 따뜻해진 덕에 살아남는 개체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 결과 도토리거위벌레가 알을 낳아 떨어뜨리는 도토리가 매년 2~5% 늘고 있다고 곤충연구가 한영식씨는 분석한다.
도토리를 둘러싼 숲 생태계가 균형을 이루던 시기의 정경을 파브르는 '곤충기'에서 이렇게 전한다. 어느 날 마을에서 그 마을 소유 도토리를 수확한다는 북을 치면, 그 마을에서는 온 집안 식구가 동원된다. 아버지는 장대로 가지를 치고, 어머니는 손이 닿는 도토리를 딴다. 아이들은 땅에 떨어진 걸 줍는다. 들쥐, 어치, 바구미, 그 밖에 많은 동물의 기쁨거리가 된 다음에는 이 수확에서 비계가 얼마나 생길까를 계산하는 삶의 기쁨이 따른다.
이제 도토리거위벌레가 숲의 주요 식량을 제 애벌레 몫으로 먼저 챙기는 바람에 야생동물의 겨울이 팍팍해졌다. 한씨는 책 '작물을 사랑한 곤충'에서 "도토리가 줄자 반달가슴곰은 일찍 겨울잠에 들어간다"고 전한다. 지리산 산꾼들은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이 2년 전부터 극성을 부리고 있다며 "산에 도토리가 귀해져 먹을 게 없으니 야생동물이 마을까지 내려올 수밖에 없겠지"라고 말한다.(중앙SUNDAY, 2013ㆍ6ㆍ2)
백우진 선임기자 cobalt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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