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점은행에 건물 지어달라는 대학
높은 임대료, 각종 찬조금 강요...수익 적지만 미래고객 유치에 경쟁
[아시아경제 장준우 기자]# A은행은 20년 동안 거래하던 대학교에서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계약을 연장하려면 교내에 40억원 상당의 건물을 지어달라는 요구를 받았기 때문이다. 자금여력이 없던 A은행은 결국 계약 연장을 포기하고 교내 지점을 철수했다.
# 수도권의 한 사립대학에 입점하려던 B은행은 대학 측으로부터 매월 임대료와 연간 5억원의 재단발전기부금, 행사지원비를 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무리한 요구라 생각해 입점을 단념하고 대신 운영비용이 적게 드는 대학가 근처에 지점을 열었다.
은행들이 대학의 과도한 기부 요구에 속병을 앓고 있다. 대학 내 입점하는 조건으로 각종 명목의 기부금을 강요받고 있기 때문이다.
8일 은행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의 전국 대학 내 지점은 우리 32개, 신한 25개, 농협 21개, 하나 17개, 국민 12개다. 대학마다 학내에 평균 1~3개 은행이 진출해있다.
대학 내에 입점한 지점의 수익성은 비교적 낮은 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학지점은 주 고객이 대학생과 일부 교직원으로 제한돼 있다"며 "대출보다 소액예금 비율이 높아 예대마진이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낮은 수익성에도 불구하고 은행이 대학에 입점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래 고객 유치를 위해서다. 은행권 관계자는 "성인이 된 후 처음 거래하는 은행에 충성도가 높은 편"이라며 "취업 후 직장의 주거래은행에서만 급여통장을 개설해야 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제약이 없어 대학 내 영업은 미래 고객 확보를 위해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대학이 이를 이용해 은행에 과도한 부담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영업을 맡고 있는 한 은행 관계자는 "일부 대학은 입점 경쟁을 유도해 많은 기부금을 받으려고 한다"며 "입점 조건도 부담스럽지만 입점하고 나서도 각종 명목의 찬조금을 낼 것을 강요받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국립대도 국유재산 사용료 명목으로 은행에 기부를 요구하긴 마찬가지다. 은행이 비용을 들여 건물을 짓고 입점하면 일정 기간 후 대학이 건물을 기증받는 식이다. 또 매년 최소 1억원 상당의 기부금을 대학발전재단에 전달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전반적인 수익 감소로 가뜩이나 경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대학들의 무리한 요구가 부담스럽다"며 "일부 대학들의 과도한 요구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사립대학의 경우 총장이 바뀔 때마다 입점 은행도 바뀌기도 한다. 재단이사회의 총장 평가항목에 영리사업 실적이 반영돼 총장들의 주요 수입원으로 입점 은행을 이용한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대학들이 수입확보를 위해 입점 은행을 바꾸면서 학생들에게까지 불편을 주고 있다. 수도권 한 사립대에 재학 중인 박모(25)군은 입점 은행이 바뀌면서 해당 은행계좌와 연동된 스마트학생증을 재발급 받으란 통보를 받았다. 박 군은 "학생증을 재발급 받기 위해 은행 계좌를 새로 개설하고 재발급 수수료도 부담하는 불편을 겪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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