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이도우의 소설 '잠옷을 입으렴'..유년에 화해를 청하다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이도우의 소설 '잠옷을 입으렴'은 유년기 성장소설이다. 주인공 '둘녕'은 어릴 적 가족과 헤어져 홀로 외가에 온다. 외가에는 외사촌인 '수안'이 있다. 따라서 둘녕은 약자다. 양보해야한다. 둘녕은 이모와 할머니의 보살핌에도 결핍이 강할 수밖에 없다.대개 결핍은 욕망을 이끌어낸다. 그럼에도 둘녕은 수안 혹은 이모, 외가 식구들에게 자신을 드러내거나 부딪치려 하지 않는다. 즉 주어진 환경, 나아가 구조적으로 그가 놓여 있는 사회를 거부하지 않는다. 일찍 애늙은이가 된 상황이다. 진작부터 그런 삶이 불가피한데는 수안이란 존재를 무시할 수 없다. 이윽고 둘은 갈라져 서로 다른 길을 가고, 결국 헤어진다.
둘녕은 서른이 넘은 나이에 세진상가에서 '실과 바늘'이라는 자그마한 가게를 꾸리며 혼자 산다. 그러다가 산호를 만나면서 유년의 고향을 찾아 나서려 한다. 그녀는 다시 새로운 출발점에 서서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수안에 대한 미안함, 상처를 보듬으려 한다. 그것이 잠옷이다. 잠옷은 두 사람 관계의 시작이자 끝이다. 외가에 처음 왔을 때 이모가 사준 잠옷을 수안과 함께 입었던 시간은 두 사람이 공유한 세상이다.
공유된 세상속의 어린 주인공은 울분이나 좌절 등 약자들이 갖는 부정적인 감정보다는 항상 타협을 도모한다. 어린 아이가 취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이 경우 어른이 돼서는 트라우마일 수 있다. 결국 둘녕은 상처의 근원을 더듬기 시작한다. 이런 태도는 매우 의미 있다. 누구나 상처와 스스로 맞서기는 쉽지 않다. 상처의 근원이 사회적 린치라면 오히려 편할 수 있다. 대항하거나 묵인하면 된다.
그러나 화해를 청할 수 밖에 없는 선택은 상처가 나 혼자만 푼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데서 비롯된다. 결국 주인공은 '자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이는 그동안 성장소설이 보여줬던 치유 담론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소설은 따뜻하고, 은근히 서럽고 목 메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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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어른이 된 둘녕은 수안에게 잠옷을 전하려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둘녕은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처럼 또다른 여성성을 옮겨갈 수 있는 까닭이다. 이도우의 '잠옷을 입으렴'속 '상처'라는 병리는 우리 모두 공명할 수 있는 단순한 '치유놀이'가 아니다. 진정한 치유는 자기와의 화해에 앞서 타인과의 화해임을 알려준다.
그것이 누리고 싶지 않았던 삶일수록, 이미 오래전에 작별한 시간일수록 미래에 대해 품을 수 있는 희망의 근거는 더 크다는 데 있다. 결국 자기가 자신을 가장 사랑할 수 있고, 또 상처를 근본적으로 치료해줄 사람은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을테니까. <'잠옷을 입으렴'/이도우 장편소설/알에이치 코리아 출간/값 1만2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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