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한 번만 뒤로 젖히면/바로 보이는 별/그 별을 못 본 지도 어언 스무 해가 되었네//별이라는 존재를 잊고 산 세월에 대해
무슨 거창한 이유가 있겠는가/그냥 별 볼 일이 없었을 뿐이네//그랬는데,//잊고 지내던 무용지물 그 별천지를/오늘 우연히 강원도 울연한 산중에서 보았네/어린 풀벌레들이 조잘조잘 말 걸며/내 옷자락 잡아끄는 곳/무량한 우주의 한 식솔로 서서//하!/여전히 청청(靑靑)한 처녀성의 별들(.....)
문창갑의 '어렴풋이 고요하게' 중에서
■ 경기 강원 일대에 흩어진 폐사지를 순례하다가 낮시간을 놓쳐 이슥한 밤에야 다다른 석탑과 당간지주. 일행은 캄캄해진 논바닥 한복판에 우뚝 선 탑과 돌기둥을 아쉽게 훑다가 자연스럽게 밤하늘 별빛에 눈을 주게 되었다. 그 빛을 만나는 순간, 우린 무엇을 보러왔는지도 잊었다. 천구(天球)에서 수천년 전부터 달려왔을 별의 윙크와 키스와 포옹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한동안 모두 말을 잊고, 땅바닥과 붙어버릴 듯이 바싹 내려온 성좌를 여행하고 있었다. 온몸이 감관을 열고 별과 교환(交歡)하는 기묘한 경험은, 성희(星戱)라 할 만했다. 우주가 성감대였고 몸이 움직이면 천구가 꿈틀거렸다. 문창갑처럼 어렴풋이 고요하게 느낀 것이 아니라, 벼락치는 빛의 광란과 살이 터지는 소리의 몸부림으로 별을 느꼈다. 내가 그냥 살아있는 게 아니구나. 삶이란 유한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지지고 볶는 일이 아니라, 신성에 닿아있는 거대한 계획들이 빛나는 것이구나, 목숨 하나가 하늘보다도 크구나 하는 생각들이 벌떡거리며 숨을 쉬었다. 아름답고 처절하고 광활하던 그때의 교성(交星)이, 시 한편에 문득 다시 터져나온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