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 국가들, 유로 탈퇴후 부채탕감 요구해야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울프슨 경제학상은 지난해 11월 가장 좋은 유로존 위기 해법을 제시하는 이에게 25만파운드를 주겠다고 한 영국 의류업체 넥스트의 최고경영자(CEO) 사이먼 울프슨의 이름을 따 만들어졌다.


지난 7월5일 이 상금의 주인공이 가려졌다. 영국 런던 소재 컨설팅업체 캐피탈 이코노믹스의 로저 부틀 팀이었다. HSBC 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옥스포드 대학 교수를 역임했던 부틀은 2000년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을 강타했던 닷컴 버블과 전 세계적인 부동산 시장 붕괴를 예측해 이미 유명했던 인물이다.

부틀의 팀은 '유로 탈퇴하기: 실질적인 안내서(Leaving the Euro: A Practical Guide)'라는 제목의 114페이지짜리 보고서로 울프슨 경제학상의 수상자가 됐다.


미 경제 격주간지 포천 기고에서 부틀은 유로를 '불황을 만들어내는 장치(depression-making machine)'라고 정의했다. 그는 유로가 현재 형태로 유지되는 것은 불가능하며 최소한 부분적인 유로 해체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부틀은 유로를 깨는 것이 성장률을 되살리고 유럽이 지금의 혼란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또 전 세계 GDP의 8분의 1을 차지하는 유로존에 커다란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고 보고 있다.

보고서에서 부틀은 스페인이 유로를 탈퇴하는 경우를 예로 든다.


스페인 정부가 금요일 유로존 탈퇴를 선언한다. 주말 동안 은행 거래는 중단되고 그 어떤 전자거래도 허용되지 않는다. 월요일 자정을 기해 옛 스페인 유로가 옛 스페인 통화인 페세타로 교환된다. 월요일 아침부터 유로는 외환이 되고 거래가 시작되면서 페세타는 유로에 대해 급속히 평가절하된다. 택시 가격은 단 몇 일만에 두 배로 뛸 수 있다고 부틀은 예상했다.


부틀은 취약 국가들이 유로존을 탈퇴할 경우 각국 통화 평가절하 폭이 그리스 드라크마화 55%, 스페인 페세타와 이탈리아 리라화 40%, 아일랜드 파운드화 25% 수준이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페세타 가치 하락으로 유로로 평가된 정부 부채 상환은 불가능해진다. 부틀은 유로를 탈퇴하는 국가는 디폴트를 선언하고 채권자들에 국내총생산(GDP)의 60%까지 부채 탕감을 요구하라고 주장한다. 부틀이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그가 보기에 취약 국가들에 유로로 만들어진 부채는 사실상 허구이기 때문이다. 자격도 없는 취약 국가들에 유로를 허용해줬기 때문에 이로 인한 늘어난 부채에 대한 디폴트도 정당성이 있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부틀은 유로를 페세타로 바꾸는 것 자체가 사실상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본다.


페세타로 화폐 개혁을 할 경우 유로 채무 부담을 견뎌내지 못 하는 민간 부문에서는 파산과 구조조정이 속출할 수 밖에 없다. 부틀이 가장 큰 난제가 될 것으로 예상한 것이 바로 민간 부문이다. 부틀은 결국 정부가 민간 부문 지원을 위해 은행들에 페세타 대출을 해줄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요컨대 보고서에서 부틀은 결국 취약 국가가 유로를 포기하고 배째라는 식으로 채권국들에 부채를 줄여달라고 요구한 뒤 민간 부문 지원에 나서라고 한 셈이다.


부틀은 유로존 탈퇴로 인한 충격은 엄청나지만 어쨋든 충격을 일회성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주장한다. 취약 국가들이 유로존에 남아봤자 고통만 연장되고 고통이 더 심각해질 수도 있다는게 부틀의 생각이다.


부틀에 따르면 취약 국가들이 유로존에 남으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첫 번째는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경우처럼 이미 GDP를 넘어선 막대한 부채다. 두 번째 더욱 심각한 것이 과도한 생산비용 상승으로 인한 경쟁력 상실이다.


지난 10여년간 유로존 국가들의 경쟁력 격차는 점진적으로 확대됐다. 노동 비용의 차이 때문이다.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스페인의 단위노동비용은 연 평균 4.3% 증가했다. 이탈리아와 아일랜드도 각각 3.4%, 4.1% 상승했다. 반면 독일은 0.9%에 그쳤다. 경쟁이 될 수 없다.


부틀은 이러한 비용 상승률 차이 때문에 유로존 핵심 국가와 주변국 사이의 경쟁력이 30~40%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경쟁력 상실로 인해 이탈리아의 수출이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대 후반만 해도 5%에 이르렀지만 지난해 2%로 뚝 떨어졌다.


취약 국가들이 유로존에 남은 채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임금 삭감과 세금 인상, 정부 지출 축소 등 혹독한 긴축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경쟁력을 회복하려면 10년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부틀은 말한다. 긴축을 추진하는 기간 중에도 유로에 의한 부채와 이자 지급 비용은 계속해서 높아지게 되며 사실상 유로존에 잔류하면서 채무를 청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는게 부틀의 진단이다.


따라서 부틀은 유로 탈퇴가 부채와 경쟁력 상실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유로존을 떠나면 몇 개월간 성장이 둔화되고 실업이 증가하면서 고통이 따르겠지만 통화가치 하락에 따른 수출경쟁력 강화로 1년 이내에 성장세를 회복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로존에 잔류하게 될 핵심 국가인 독일의 경우 수출경쟁력이 약해지겠지만 수입 물가도 하락하는 효과가 있으니 성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틀은 예상했다. 또 부틀은 유로존 탈퇴의 적법성에 대한 문제가 애매하지만 국제법에 따라 정당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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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틀은 유럽이 긴축이 아니라 성장을 강조해야 하며 정치인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부틀은 결국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경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인들이 부채에 시달리는 취약 국가를 돕기 위해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그들은 성장률을 회복하는 것에 대해 결코 말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정치인들은 장황하게 말만 늘어놓고 시간을 벌기 위해 공공 부문에서 많은 돈을 빼낼 뿐이며 결국 시장이 이길 것이고 유로를 버리는 것은 더 이상 상상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 현명한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부틀은 유럽이 유로를 깨면 성장률 회복은 놀랄 정도로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병희 기자 n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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