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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경선칼럼]59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의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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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휴대폰에 낯선 번호가 떴다. 육군본부 신모 소령이라고 밝힌 이가 뜬금없이 아버지가 6ㆍ25전쟁 때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는 전쟁 중의 혼란으로 훈장을 수여하지 못했는데 가족을 찾았으니 이제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6ㆍ25전쟁이 끝난 지 59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이미 35년이나 지났는데 난데없이 훈장이라니….

황당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로부터 당신이 훈장을 받았다는 얘길 들은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금시초문이라는 것이다. 다음 날 신 소령에게 언제 어느 전투에서 무슨 공을 세워 훈장을 받은 것인지, 내용을 좀 자세히 알려 달라고 했다. "아버님은 3사단 23연대에서 복무하셨고 1953년에 529고지(일명 관망산 전투 1953년 6월25일~7월3일)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화랑무공훈장을 받으셨습니다."
아버지의 그 훈장을 오늘 어머니가 받았다. 늦게나마 아버지의 훈장이 돌아온 건 기쁜 일이다. 당신은 죽고 없지만 명예스러운 징표를 잊지 않고 찾아준 나라의 정성이 고마웠다. 한편 아쉽고 서운한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진즉에 찾아주었더라면, 아버지가 생전에 받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름 없이 전장에서 죽거나 지금 어디선가 돌보는 이 없이 쓸쓸히 지내고 있는 참전용사들이 수십만명이라고 한다. 유해조차 찾지 못한 이도 수만이다. 그에 비하면 아버지는 얼마나 다행한 경우인가.

6ㆍ25전쟁 전사자는 13만7000여명이고 실종자가 2만여명이다. 전사자 가운데 국립묘지에 안장된 유해는 4만여구에 지나지 않는다. 4만여구는 북한과 비무장지대(DMZ)에, 나머지는 이 땅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그나마 2만여명은 유가족을 찾지 못해 전사 통지서조차 전달하지 못했다고 한다. 여태 자신이 훈장을 받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참전용사도 7만8000여명에 이른다.

안타까운 일은 또 있다. 생존한 참전용사 17만여명 대부분이 80세가 넘은 고령으로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고, 그 와중에 해마다 1만5000여명은 세상을 떠난다.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에 따르면 그들의 월평균 소득은 37만116원. 1인 최저생계비 55만3354원에 턱없이 모자란다. 65세 이상 참전용사가 받는 수당은 고작 월 12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잘난 국회의원의 연금 120만원의 10분의 1이다.
그들의 고귀한 희생이 없었다면 자유 대한민국이 오늘날 '20-50클럽'에 진입하는 번영을 누릴 수 있었을까. 국민은 그들의 값진 희생을 기리고 국가는 그들과 그 가족을 보살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고마움도 보답도 갈수록 희미해져 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청소년의 57.6%는 6ㆍ25가 언제 일어났는지조차 모르고 있고, 지난해 6.25 참전 전사자 사망보상금으로 달랑 짜장면 한 그릇 값인 5000원을 지급하려던 정부의 무심함이 단적인 예다.

그들이 가난과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참전수당을 인상하는 등 최소한 편안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국가와 국민이 나서야 한다. 경제적인 도움뿐만이 아니다. 500여명으로 추산되는 국군포로의 송환은, 아직 시작도 못 한 북한 지역과 DMZ의 유해 발굴 작업은 어찌할 건가.

200만명의 사상자와 1000만명의 이산가족을 남긴 6ㆍ25전쟁. 아직도 북침이라고 주장하는 얼치기 진보들이야 그렇다 치자. 자유 대한민국을 사는 오늘의 우리도 혹 그들의 희생을 잊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전쟁의 참혹한 기억은 잊어도 전쟁이 일어났었다는 사실마저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아직 돌아와야 할 이들이 많고, 돌봐주어야 할 이들도 많다. '6ㆍ25'는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어경선 논설위원 euh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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