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의철 기자] 필자가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신문사의 3층 복도엔 "신문은 아무도 사용(私用)할 수 없다"는 현판이 걸려있었다. 이미 고인이 된 신문사 회장이 직접 쓴 현판이었는 데, 초짜 기자였던 필자에게도 그 메시지는 명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망치로 머리를 탁 얻어맞은 듯한 느낌은 바로 그 '아무도'라는 표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정치 권력이든, 경제 권력이든, 심지어는 기사를 쓰는 기자나 편집간부, 나아가 경영진(말하자면 언론 권력)까지, 어느 누구도 신문지면을 사적(私的)으로 이용해선 안된다는 뜻이었다. 말하자면 신문지면을 특정 집단이 좌지우지해선 안된다는, 또 그걸 허용해서도 안된다는 의미다. 왜냐. 지면은 어느 특정인의 소유가 아니라 독자들의 것이기에.
이후로도 숱하게 공정보도나 정도언론을 강조하는 글을 읽고, 말을 들어왔지만, 이처럼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고, 게다가 현실성까지 있게 그 뜻을 전달한 경구는 없었다.
가외의 소득으로 지면을 잘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私)가 끼면 사(邪)가 낀다고, 자기이해관계에 따라 지면을 농단하거나, 편향되게 만든 선배나 동료들의 경우 말로가 별로 안좋았다.
이후 이 문장은 필자가 기자 생활에서 자세를 가다듬을 때마다 언제나 되새겨 보는 경구가 됐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렇지! 지면은 아무도 사용(私用)할 수 없어!"
다만 씁쓸했던 건,누구보다도 입에 거품을 물며 현판에 쓰여 있던 그 글귀를 강조했던 선배들이 나중에 고위공무원이 되거나 회사를 옮기고 난 후엔 말이나 행동을 바꾸는 것이었다. 다만 그것마저도 내 말과 행동을 삼가는 데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됐으니, 누굴 탓하고 말고 할일은 아닌 것 같다.
굳이 옛날 얘기들을 시시콜콜 거론한 이유는 최근 개국한 소위 종편채널들 때문이다. 종합편성 채널인지, 종속ㆍ편향 채널인지 아리송하지만 종편 개국 이후의 몇몇 프로그램을 찬찬히 보니 참 가관이다. 콘텐츠의 부실을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그건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나아질 수 있다.
그러나 방송의 전면에 흐르는 철학을 보니 무척 위험하다. 공공성에 대한 조금의 고민도 없이 방송과 화면을 완벽한 자사이기주의에 입각해 사용(私用)하는 게 그렇다. '방송은 공공재'라는 최소한의 인식도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상파에 대해 까다로운 규제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방송의 공공성 때문이다. 지상파의 경우 계열사 홍보는 원천 금지돼 있고, 간접광고도 엄격하게 규제한다. 뉴스에 상호 같은 것이 광고성으로 표출되면 당장 경고에 사과방송 명령까지 받는다.
이는 전파가 공공재이자, 궁극적으로 누구의 소유도 아닌 국민의 것이기 때문이다. 케이블이니까 괜찮다고? 그렇다면 그렇게 엄숙하게 폼을 잡지 말아야 한다. 권리를 말할 땐 지상파이고, 의무를 얘기할 땐 케이블인가?
유력 대선 후보의 인터뷰 자막에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라는 낯간지러운 찬사는 그렇다고 치자. 그걸 그 다음날 신문지면에 버젓이 쓰는 행위는 용기(?)에 가깝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점은 종편을 소유한 신문들이 지면으로 자사의 프로그램을 노골적으로 광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몇 개면에 걸쳐 전날 방송한 프로그램을 싣는 것은 물론이고, 4개 종편 모두 1%도 채 안되는 평균 시청률로 '도토리 키재기'식 자랑을 늘어놓기 바쁘다. 전형적인 지면 사용(私用) 행위다. 더구나 4개 채널 모두 시청률 1등이라니, 이것이 어떻게 나온 산술인지조차 시청자들은 납득하기 어렵다.
신문 방송 겸영의 시너지 효과가 이를 뜻하지는 않는데, 이쯤 되면 지면의 사적인 이용을 넘어 공해 수준이다. 지면의 사용(私用)은 결국 신문들에게도 부메랑이 될 수밖에 없다. 콘텐츠의 부실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이는 언제나 독자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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