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부를 꿈꾸는 사람들]초짜 농부들 좌충우돌 ‘전원일기’ 녹색생명문화 여는 ‘農비어천가’
광명시 도시농부학교를 가다
어설픈 건 싫다. 하려면 제대로 배우겠다며 도시농부학교로 발길을 내디딘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 도시 토박이로 농사 경험이 전무한 ‘초짜’들이다. 이들은 전국귀농운동본부 광명텃밭보급소에서 2평 남짓한 텃밭을 분양받아 올해 8월부터 가을농사를 지었다. 지난 12일, 처음 농사에 뛰어든 도시농부들의 수료식과 함께 좌충우돌 거둬낸 땀의 결실을 평가받는 경작보고 발표회가 열렸다. 이들은 과연 진짜 도시농부의 변신에 성공했을까.
경기도 광명시청역 근처에서 버스로 20여분 달려 도착한 옥길동 두길리 옥길농장. 널따랗고 삭막한 대지 가운데 오아시스처럼 푸른 채소밭이 눈앞에 펼쳐졌다. 약 4958㎡의 밭에 푸릇푸릇한 배추·상추와 알차게 익은 무들이 농부의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가 학교에서 배운대로 텃밭을 풍성하게 잘 가꾸었을까.
자신감에 찬 사람, 울상인 사람, 긴장한 사람 등 각양각색의 표정이 흥미롭다. 귀농운동본부 텃밭보급소의 김희수 이사가 밭을 옮겨다니며 한 사람 한 사람이 일군 작물에 대해 평가할 때마다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마지막까지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귀담아 듣기위해 눈을 반짝이는 모습이 영락없는 '학생농부'였다.
“가꾸고 나누는 즐거움에 푹 빠졌어요”
“무는 자랄 때 잎사귀를 잘 따줘야 하나요?” 한 (도시농부)학생의 질문에 김 이사가 대답한다. “뿌리를 잘 키우려면 잎이 처지는 것들은 떼어내야 하지요.” 농사 경험이 없는 초보농부 윤종일씨. 고생속에서 그나마 양배추는 실하게 키워냈다는 칭찬을 들었다.
윤 씨는 “작물을 심는 과정에서 초기에 엄청나게 고생했어요. 토질을 좋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심는 것마다 잘 안 자랐거든요. 쪽파, 무, 양배추, 상추를 심었는데 상추는 죽은 게 많아요. 쪽파는 무성했는데 뽑아 먹어 몇 개 안 남은 상태예요. 양배추 하나 건진 셈이죠.”
김 이사가 다른 밭의 배추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 배추는 왜 묶어 줬어요?” 날씨가 추워져 그랬다는 밭 주인에게 “옷이 거추장스럽고 불편할 수 있잖아요. 배추도 묶지 않을 때 편안해 합니다. 사람도 얼굴색을 보면 영양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데 배추 색이 짙으면 거름을 많이 줬기 때문입니다. 이 밭의 배추는 시중에 내다 팔아도 제값 이상을 받을 만큼 잘 자랐습니다"라며 호평을 한다.
김 이사가 무를 뽑아들었다. “이거 하나만 잘 자랐네요. 원인이 뭘까요. 웃거름을 많이 안 줬나 봐요. 오줌액비를 두번 줬다고요? 더 줬어야 했는데….“ 기자가 궁금해서 물었다. “오줌액비는 어떻게 만드는 거예요?” 소변을 페트병에 밀폐시켜 7~10일 정도 발효시킨 후 소변과 물을 5:1로 섞어 뿌린다고 했다.
한 아주머니가 밭에서 방금 막 딴 갓의 잎사귀를 건네줘 우물우물 씹어봤다. 싱싱함이 때깔부터 달랐다. 겨자잎처럼 혀끝을 톡 쏘는 맵고 아린 맛이 오래도록 남는다. 누군가 우스갯소리를 던진다. “태평농법으로 지었더니 저 밭은 농사가 잘 안 됐네요.” 이들은 제대로 가꾸지 않아 엉망이 된 밭을 ‘내놓은 자식’ ‘저주받은 땅’으로 부르고 있었다. 농사 성적은 발길, 손길이 얼마나 닿았느냐에 따라 비례한단다.
농사라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 해본다는 박병용(53)씨. 아내가 도시농부학교 홍보 전단지를 가져다 준 것이 계기가 됐다. 지난 7월부터 채소를 길렀는데 여기서 딴 채소들로 동네 사람들을 다 먹였다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무청은 데쳐 베란다에 주욱~ 걸어놓고 무말랭이를 만들어서 나눠줬다. “이야~. 뭔가를 키워냈다는 자긍심에 뿌듯하더이다. 먹는 즐거움도 있고요. 같은 노동이라도 뭔가를 키우는 게 재미있어요.”
처음엔 조급증 때문에 힘들었다고 했다. 빨리 열매맺기를 기대하는 통에 멀쩡한 채소가 죽었는 줄 알고 별 짓 다 했단다. 원래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자연과 함께 하면서 몸과 마음도 튼튼해졌다.
주부 구은영(42)씨는 평소 안전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아 학교를 찾았다. “밖에서 파는 것보다 내가 키운 채소가 최고죠.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여기서는 무, 배추, 갓, 알타리무를 키우고 있어요. 아들의 소변으로 만든 오줌액비를 받아서 쑥쑥 크는 ‘얘네들’을 보니 보람이 참 큽니다.”
60대 중반의 사업가 김창준씨도 머리가 아플 때마다 이곳을 찾는다고 자랑한다. 식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얻는단다. “손주와 함께 와서 놀기도 해요. 농사를 짓다 보니 토지 개량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 후엔 작물을 뭘 심을지 선정하고 배치설계를 잘 해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귀농 희망자에게도 도시농부학교에서의 배움은 큰 도움이 된다. 주부 양강희(50)씨는 지난해까지 직장을 다니다가 퇴직하고 귀농을 준비하고 있다. 답답한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살겠다는 뜻에서다. 벌써 내려가 살 땅까지 사놨다. 농사는 처음이 아니지만 이곳에 와서 큰 가르침을 얻었다.
“농사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것 외에 땅의 소중함을 통해 땅을 살리고 생명을 중시하는 마음을 배우게 됐다”고 설명했다. 자신도 귀농해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으로서 땅을 생각하는 농부가 되겠다고 결심했단다. 이곳 텃밭학교에서는 퇴비만으로 농사짓기를 지향한다. 유기순환 농법을 강조하는 이유다.
저쪽에서 수확한 큰 무를 들고 학생들이 즐겁게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였다. 취재에 동행한 사진기자는 상추 한 웅큼을 들고 왔다. 아파트에 살면 서로 옆집인데도 잘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생판 모르던 남들이 여기 와서 같이 농사지으면서 소통하고 수확한 채소도 나눠 먹을 정도로 친해졌다.
귀농운동본부 텃밭보급소 이승봉 광명지부장은 “최근 안전먹거리에 대한 인식이 부쩍 높아진 상황에서 자신이 직접 키운 것을 먹고 나누는 활동을 통해 공동체 생활의 의미까지 되새길 수 있다”며 “도시농업은 돈과 노동의 의미를 뛰어넘는 가치가 있다”고 전했다. 순도 100%의 도시사람들이 어느덧 이곳에서 '땅의 아들' 즉 진짜 도시농부로 변해 있었다. “우리처럼 농사지으려는 사람들, 아니 농사짓는 사람들 주변에 정말 많아요. 아마 놀라실 걸요?”
“자녀에 자연환경 교육 또 다른 보람”
사람들은 왜 도시농사에 열광할까. 일단 자급자족에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많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중동 동일하이빌 아파트는 단지 내에 660㎡의 공동텃밭을 조성했다. 친환경 지구 콘셉트로 차별화하려는 취지다. 현재 아파트관리소가 1년에 한 번 주민들에게 3.3m²씩 분양해 운영하고 있다.
동일하이빌 관계자는 “200세대가 상추, 배추, 방울토마토 등을 재배하고 있다”며 “직접 키워 먹을 수 있는 즐거움과 뿌듯함 때문에 주민들의 호응이 높고 아이들 자연 체험학습장으로도 인기 만점”이라고 전했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2동 주민센터 옥상에는 주민들이 직접 가꾸는 대형 상자텃밭이 있다. 주민센터 김영규 행정팀장은 “이곳에서 수확한 배추, 무, 상추 등을 관내 독거노인에게 보낸다”며 “나눔을 실천할 수 있어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대학생 도시농부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대학생 텃밭강좌를 열고 있는 전국귀농운동본부 텃밭보급소 보급원 이지은씨는 “먹거리, 석유기반 농업에 대해 위기 의식을 느껴 내손으로 직접 가꾸고 먹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씨는 “강좌 첫날 학생들이 많이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았다”며 “텃밭학교는 전통 농업뿐 아니라 생태순환 등 생명의 중요성을 가르치는데 한몫한다”고 말했다. 도시농업의 물결은 초등학생, 유치원생들에게까지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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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지렁이, 벌레, 흙 등에 대한 자연환경 교육은 방과후 활동이나 전국교과과정으로 편성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학교나 유치원 옥상 및 텃밭현장에서 활동하는 어린이 농부들도 적지 않다. 그야말로 도시농업은 팍팍한 도시 한가운데 새로운 녹색생명문화의 둥지를 틀고 있는 도시농부들의 ‘농(農)비어천가’처럼 울려퍼지고 있다.
도시농부로 사는 데 어려움이 없지는 않다. 씨앗이나 농사도구를 구하는 곳이 한정돼 있어 아직은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적어 불편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또 베란다 상자텃밭의 경우 운영자 측에서 보급에만 신경썼지 사후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사례가 허다하다는 전언이다. 전문가들은 “진짜 도시농부가 되려면, 또 진짜 도시농부를 양성하려면 지속적이고 제대로 된 도시농업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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