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여자' 김추련, 신변비관으로 자살
'겨울여자의 남자' 김추련, 가을에 떠나다
[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외로움과 어려움을 견디기가 힘들다. 팬들과 가족에게 미안하다.”
김호선 감독의 ‘겨울여자’(1977), 김기영 감독의 ‘흙’(1978) 등 1970~80년대 충무로 영화계를 풍미한 영화배우 김추련(65) 씨가 마지막 남긴 한 마디다. 8일 오전 11시 45분경 경상남도 김해시 내동 소재의 오피스텔에서 김 씨가 목을 매 숨진 것을 그와 같은 교회에 다니던 강모(50) 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조사에서 강 씨는 “오전에 김 씨 편지를 받았는데 죽음을 의미하는 이상한 내용이 있어 오피스텔로 찾아가 보니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 편지를 받았을 때는 아마 나는 저 세상에 가 있을 것 같네”라는 내용으로 자살을 직접적으로 암시한 김 씨는 “내 죽음을 확인한 다음에 112에 신고해 줄 것”을 강씨에게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독신으로 살아온 김 씨가 고혈압·당뇨 등 지병과 우울증에 시달려왔다는 지인들의 진술을 통해 자살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다.
AD
김추련 씨는 남성적 외모와 선 굵은 연기로 1970년대 한국 영화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장본인이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후 김 씨는 이원세 감독의 ‘빵간에 산다’(1974)에서 주연인 ‘영식’ 역으로 화려하게 스크린에 데뷔했다. 교도소 내 죄수의 사랑을 그린 ‘빵간에 산다’로 김 씨는 그 해 열린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신인연기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비녀’ ‘빗 속의 여인들’ ‘학도의용군’ 등의 히트작들에 출연하며 입지를 다졌다. 김씨를 확실한 청춘 스타로 등극시킨 영화는 신성일, 장미희와 함께 출연한 ‘겨울여자’(1977)다. ‘겨울여자’는 서울 인구가 600만 명이던 당시, 1개 상영관에서 58만 명 관객 동원이라는 흥행 신기록을 달성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연기 활동이 뜸해진 김 씨는 여러 사업에 손댔으나 성공하지 못했으며, 2006년 ‘썬데이 서울’로 스크린에 복귀하며 제 2의 전성기를 꾀하기도 했다. 지난 9월 개봉된 박갑종 감독의 ‘은어’(2010)가 김 씨의 공식적인 유작이다. 고인의 빈소는 누나가 거주하는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의 동마산 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10일 오전 7시로 예정됐다.
태상준 기자 birdcag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