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문학 작품에서 '뇌'를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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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생각을 살짝 비틀었다. 문학 작품을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보고서로 바라 본 한 교수의 얘기다.


러시아 정부에서 푸슈킨 메달을 받았을 만큼 러시아 문학에 정통한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는 문학 작품을 두고 탁월한 '인간탐구보고서'라고 말한다. 문학 작품 속 인물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잘 살펴보면 뇌과학 이론들과의 연결 고리를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문학 작품에서 이야기 전개가 어떻게 되는지를 따라가는 대신 주인공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어떤 식으로 연애편지를 쓰는지,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어떻게 '기억'을 풀어내는지를 쫓는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잠자는 살인'에 나오는 영국인 신부 그웬다 리드의 얘기에선 기억의 저장소인 '해마'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읽을 수 있다. 갓 결혼한 이 신부는 영국 남부 딜머스 일대를 돌아다니다가 빅토리아풍의 예쁜 집을 발견한다. 집을 보자마자 이상하게 가슴이 설렌 그녀는 집 안으로 들어서 침실을 둘러본다. 침실에 어울리는 벽지를 떠올려 보던 그녀는 우연히 붙박이장 안에 남은 옛날 벽지가 자신이 생각했던 그 벽지와 완전히 똑같다는 걸 확인하고는 놀란다.

어떻게 된 일인가 했더니, 그 집은 바로 그녀가 아주 어렸을 때 살았던 곳이었다. 그 곳에서 살인 사건을 목격한 그녀가 그 때의 기억을 억지로 지워버린 것이었다. 아예 사라진 줄 알았던 그 기억은 그녀가 극장에서 살인 장면을 보는 순간 되살아났고, 그렇게 기억은 다시 돌아왔다.


석 교수는 여기서 해마처럼 생겼다고 해서 '해마'라 불리는 대뇌피질 속 기억저장소 얘기를 꺼내든다. 아주 어렸을 때엔 사건을 기억하는 데 관여하는 뇌 부위들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아 어떤 일을 기억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다.


신경과학자들에 따르면 아이들은 18개월이 돼야 자신을 기억의 일부로 포함시키며, 3~4살이 돼야 기억 기능이 완벽하게 갖춰진다고 한다. 해마는 비언어적인 기억을 언어적으로 부호화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하는데, 3살까지는 해마의 이런 기능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가사 크리스티는 이 같은 과학적 사실들을 몰랐는데도 이야기를 꽤나 개연성 있게 구성했다고 말한 석 교수는 '잠자는 살인'의 결말이 정신분석학이 제시하는 해결책으로 흘러간다고 설명한다. 뒤늦게 되살아난 어렸을 때의 기억을 완전히 끄집어 내 이 기억 자체를 해소하는 내용으로 짜여진 소설의 결말 역시 과학적이라는 얘기다. 그는 마지막 장면에서 소설 속 신부가 아무런 두려움 없이 예전 그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고 그린 부분을 예로 들며 '뇌과학'과 '문학'이 어떻게 한 데 어우러졌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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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이외에 '흉내', '몰입', '망각', '변화'를 주제로 석 교수가 풀어내는 문학과 뇌과학 얘기는 새롭고 또 흥미롭다. 못다 적은 내용들이 궁금하다면 '뇌를 훔친 소설가'를 펴보길 권한다.


뇌를 훔친 소설가/ 석영중 지음/ 예담/ 1만4500원


성정은 기자 j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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