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유로존 위기 ‘소방수’ 될까
WSJ "ECB 이탈리아·스페인 국채 매입은 유로존의 분수령 될 것"
[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을 정점으로 세계 경제가 요동치는 가운데 유럽중앙은행(ECB)이 이탈리아와 스페인 국채 매입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각국 중앙은행 총재와 위원들로 구성된 ECB 정책위원회는 7일(현지시간) 오후 긴급 영상전화 회의를 열고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푸어스(S&P)의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과 이탈리아·스페인의 재정위기 전이 우려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의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로이터통신은 회의에 참여한 유로존 관계자를 인용해 “ECB가 ‘시장에 단호하게 개입’키로 결정했으며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국채를 상당한 규모로 집중 매입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ECB는 회의 종료 후 성명을 통해 “채권시장프로그램(SMP, 발행시장이 아닌 유통시장에서 유로화표시 국채 등을 매입하는 정책)을 시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서 “위기의 중심이 된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재정구조 조정을 위한 새로운 정책을 내놓은 것을 환영하며 양국 정부는 조속히 이를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촉구했다. ECB는 앞서 4개월 이상 국채매입을 중단했다가 지난주 아일랜드와 포르투갈 국채를 다시 사들이기 시작했다.
성명에는 국채 매입의 대상으로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명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ECB 성명의 의미는 분명하다. 그리스 재정 위기가 더 큰 국가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제 ECB가 직접 팔을 걷어붙인다는 것이다. RBS은행은 “ECB의 성명은 즉각적이고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을 명확히 밝히고 있으며 이탈리아·스페인은 상당한 시간을 벌게 됐다”고 평가했다.
WSJ는 ECB의 개입 결정이 유로존 재정위기 극복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ECB가 이탈리아·스페인 국채 매입에 나선다는 의미는 유로존 회원국들이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거나 그럴 의지조차 없음을 인정하고 유로존의 ‘최후의 수단’인 ECB를 소방수로 투입하겠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단일 통화 체제인 유로존의 본질을 바꿀 수도 있는 결정이다.
7일 오전부터 시작된 회의 분위기는 매우 긴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23명의 ECB 정책위원들은 지난주 아일랜드·포르투갈 국채 매입 재개를 놓고 남·북부 유럽으로 갈려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상태였다. 관계자에 따르면 독일을 포함해 최소 3개 북부유럽 국가가 국채 매입에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진영의 반발이 컸지만 미국 신용등급 강등에 따른 세계 금융시장 혼란이 매입 찬성론에 무게를 실었다. WSJ는 스페인·이탈리아 국채 매입 결정으로 이미 나뉜 ECB의 골이 더 깊게 패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지금까지 ECB는 국채 매입을 통한 지원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매입 규모만 따져도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2010년 5월부터 지금까지 그리스·아일랜드·포르투갈 국채를 매입한 규모만 800억유로(1140억달러)에 이른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경제규모는 각각 유로존 3위·4위다. 폴 모르티메-리 BNP파리바 이코노미스트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국채발행 규모가 연간 6000억유로 정도임을 근거로 보면 예상 가능한 ECB의 국채 매입 규모는 2300억~ 4000억유로가 될 것”으로 추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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