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생태계 바꿔라]③'안철수級 대물'이 씨마른 까닭
잡스.저커버그 키운 美와 판이한 환경
투자 없고 절차 복잡...예비스타들 좌절
지난 2008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안철수 카이스트 교수(당시 안철수연구소 의장)의 말이다. 그가 지적했던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국내 벤처는 스타에 목마르다. 스타는 새로운 피를 의미한다. 벤처스타의 부재는 국내 벤처의 성장이 정상적이지 않음을 의미한다.
◆벤처스타는 '안철수'뿐?=지난 십수년간 국내 벤처스타는 '안철수'뿐이었다. 새로운 피가 없었다. 끊임없이 벤처가 성장하며 성공 모델이 이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한 벤처기업 대표는 "우리는 소위 벤처 영웅이 없다"며 "예비 벤처인이 우러러볼 기업가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이해진 의장이나 김택진 사장 등이 업계서는 알려져 있지만 엄밀한 의미의 스타는 아니다"며 "전 국민이 알고 지지하는 그런 급인지는 의문"이라고 전했다.
실리콘밸리로 상징되는 벤처의 나라, 미국은 다르다. 끊임없이 벤처로 성공하고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전 국민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스타가 배출된다. 시사주간지 타임지의 표지인물 선정은 단적인 예다. 매년 그 해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는 타임지는 적지 않은 벤처인들을 표지 모델로 내보냈다. 스티브 잡스 애플 CEO(1982년),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2010년) 등이 대표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사회 전체적으로 스타 벤처인을 양성해 주는 환경이 마련돼 있다"며 "스타를 바라보고 존경하며 자연스레 벤처문화도 성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 육성 환경 안돼 있어=국내에 스타로 성장할 만한 떡잎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투자, 제도, 규제 등 열악한 벤처 환경이 예비 스타 새싹을 밟아버렸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2007년 미국에서 열린 소프트웨어 경진대회 이매진컵에서 2위를 차지한 세종대 팀 '엔샵605'의 경우가 일례다. 이매진컵은 마이크로스프트가 주최하는 것으로 전세계 대학생이 참가해 실력을 겨룬다. 엔샵605는 이 대회에서 국내 최초로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당시 심사에 참여했던 MS 관계자는 "환상적이다"며 "절대 없어져서는 안되는 최고의 기술"이라고 극찬했다. 문제는 이후였다. 엔샵605가 국내서 벤처에 나서려 했지만 투자도 따르지 않고 행정 절차가 복잡해 어려움을 겪은 것. 결국 이들은 미국 실리콘밸리를 오가며 회사설립, 투자유치 등을 익혀야 했다. 업계 관계자는 "스타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스타가 나올 수 없는 구조 자체도 문제"라며 "생태계를 바꾸는 것 밖에는 답이 없다"고 토로했다.
일부는 지난 2000년대 초 벤처 붐 몰락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수많은 벤처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이 벤처계 스타를 만드는 데 주저하게 됐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벤처 스타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다. 벤처 하면 부정적 인식이 강한데 그 안에서 어떻게 스타가 나올 수 있겠는가." 한 벤처기업 대표의 넋두리다.
◆스타 부재는 산업 전반에 악영향=어떤 산업이든 스타의 부재는 산업발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국내 여자골프는 대표적 사례다. 박세리-신지애-최나연 등으로 이어지는 여자골프 스타들은 골프 붐을 일으키고 나아가 인프라 확대, 관심 촉구 등을 불렀다. 지금도 많은 여학생들은 미래의 골프스타를 꿈꾸며 골프채를 잡는다. 국내 벤처는 이런 선순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안 교수는 "우리나라는 보고 배울 만한 모델이 없다"며 "새로 자라나는 싹이 없는 건 큰 위기"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유일의 벤처스타가 던지는 비판의 목소리를 되짚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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