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국 전 홀트아동복지회 부속의원장

조병국 전 홀트아동복지회 부속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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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은희 기자]조병국 전 홀트아동복지회 부속의원장(78ㆍ사진)을 만났다. 지난 14일 연세대 사회봉사상 수상 소식을 듣기 하루전인 13일의 일이다.


그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탄현동에 위치한 일산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여든이 가까운 나이에도 아직 진료를 보고 있었다.

수상소감부터 물었다. 그는 "같은 일을 오래 했다고 주시는 것 같다"며 "젊은 사람에게 주면 더 잘 할텐데 이제 일할 힘도 없는 내가 수상을 한다는 게 미안할 따름"이라고 부끄러워했다.


조 원장과 '홀트아동복지회'의 인연은 30년이 훌쩍 넘어간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고 '9.28서울수복', '1.4후퇴' 등을 거치며 우리나라 전역에는 먹을거리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한 1958년에는 영아원에 버려진 아이들이 넘쳐났다. 그는 "'전쟁 통에 먹을 것이 워낙 없으니 엄마들 젖이 나오지 않아 아이들을 버리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시엔 영아원에 보내면 미국이 우리나라에 지원해 준 유제품이라도 먹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조 원장 역시 그 아이들을 보면서 '먹을 것이 풍족한 국가에 아이들을 보내 먹을 수 있는 것이라도 실컷 먹을 수 있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1972년 서울시립아동병원 근무 시절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매년 370~380명에 이르는 4세 미만 아이들이 이 병원에서 사망했다.


100명에 이르는 1세 미만 영아들을 5~6명의 간호사들이 일일이 돌보며 우유를 먹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젖병을 물려두는 것이 전부였다.


이 과정에서 기도가 막히거나 우유가 엉뚱한 데로 흘러 기아상태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하루에 13장의 사망진단서를 써 본 적도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미아ㆍ기아 공고기간인 14일 이내에 사진을 찍어 가급적 빨리 아이들을 위탁가정에 보냈다. 그리고 입양기관에 보내는 일에 나섰다.


가장 빠른 반응을 보인 곳이 홀트 아동복지회였다. 그렇게 그는 홀트아동복지회와 인연을 맺어 기아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구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길러낸 아이들이 어느덧 6만명을 넘어섰다. 조 원장은 1976년부터 홀트아동복지회 부속의원에서 근무하기 시작했고 1993년부터는 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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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이들의 정서적인 측면을 고려할 때 입양이 시설보육보다 훨씬 낫다'고 말한다.


또 "국내입양이든 해외입양이든 무조건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결국은 아이가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자라기 위한 최선책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며 입양에 대한 사회의 인식변화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박은희 기자 lomor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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