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황석연 기자] '아가마중'/ 박완서 글/ 김재홍 그림/한울림/ 1만3000원


"골목 속 작은 집 젊은 새댁이 아기를 뱄습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처음으로 엄마가 된다는 것. 첫 아기를 맞을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거운 몸을 누이고 세상의 맛난 과일을 집어 먹을 때 이 책을 읽어주는 화자(話者)는 분명 예비 아빠일 것이다. 예비 아빠의 몸가짐도 남다르다. 퇴근길 골목 모퉁이에는 어린이 놀이터가 있다. 그 곳에는 아이들이 온종일 놀아도 심심하지 않을 만큼 여러가지 놀이틀이 있다. 그 때 예비 아빠의 눈에 들어온 것은 더러 손잡이가 빠진 시소와 한쪽 줄이 끊어진 그네도 있다. 불안이 아빠의 마음을 엄습한다. 곧 태어날 아이가 저 그네를 탈 때, 그 줄이 끊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등에 식은 땀이 난다.


[BOOK] 예비엄마들을 위한 고 박완서씨의 태교 동화책 '아가마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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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직하지 못한 세상을 향해 아빠는 망치를 들고 달려가 끊어진 그네의 줄을 잇기 시작한다. 그것이 아빠의 마음가짐이다. 그런 아빠를 보는 엄마의 마음도 다르지 않다.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 넉넉한 마음을 나눠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기를 가진 엄마의 넉넉한 마음은 담장 밖 신문 배달 소년에까지 걱정이 미친다. 그 이전엔 담장 안에 떨어진 신문만 봤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지난 1월 담낭암 투병 끝에 세상을 등진 박완서 작가의 가족 에세이가 그림 동화책으로 묶여 나왔다.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써낸 동화책이다. 사연은 이렇다.


1979년 박완서씨는 <뿌리깊은 나무>에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이란 한편의 에세이를 발표한다. 첫딸 호원숙씨가 손자를 잉태한 기쁨을 글로 적은 것이다. 글에는 곧 태어날 손자를 맞이하는 초보 할머니의 애틋한 사랑이 고스란히 담겼다.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예비 엄마인 딸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시처럼 노래했다. 사위에게는 아빠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일일이 동화체로 당부했다.


'아가마중'을 준비하는 엄마는 모아 놓았던 돈을 아낌없이 헐어 아기 옷도 장만하고, 아지랑이처럼 가벼운 이불도 준비하고 고운 좁쌀을 넣은 베개도 만든다. 엄마의 주머니는 헐렁해져도, 엄마의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들을 샀기 때문에 엄마의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하기만 하다.


어디 엄마뿐인가. 아기를 기다리는 아빠의 설레는 마음을 이 작품처럼 상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 글도 드물다. 할머니가 될 박완서씨도 자신을 동화 속에 등장시킨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준비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게 쓰여진 글이, 지난 2009년 첫 딸이 낳은 아들이 장성해 다시 그 아이를 잉태하자 동화로 탈바꿈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곧 태어날 증손주를 위해 박완서씨는 그림 작가도 직접 섭외를 했다. <동강의 아이들>로 전 세계에서 2년에 단 한권을 뽑아 수여하는 에스파스앙팡 상을 수상한 김재홍씨가 바로 그 사람이다.


[BOOK] 예비엄마들을 위한 고 박완서씨의 태교 동화책 '아가마중' 원본보기 아이콘


"얼마 있다가 우리 손자가 결혼해요. 이 책이 앞으로 태어날 증손자에게 딱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아서요."


'아가마중'을 준비하던 마지막 모임에서 그는 이렇게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예비 엄마와 아빠가 될 손자와 손자 며느리가 읽을 책이라며 정성을 다하던 바로 그 책이다.


"새로운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며 탄생을 기다리는 것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고 말한 고 박완서씨는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예감이라도 하듯, 증손자에게 줄 선물로 처음이자 마지막인 이 동화책을 만드는 데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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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이 책의 최종 편집본을 끝내 보지 못했다. 책 편집이 끝난 동화책은 그가 생을 마감한 지 석달이 지난 4월말에서야 그의 영정 앞에 바쳐졌다. 할머니의 증손자 사랑은 태교를 위한 예비 엄마와 아빠들의 동화책으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태교 중인 아이들이 들을 수 있도록 '아가마중'은 오디오북으로도 나왔다.(www.audien.com)


황석연 기자 sky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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