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나누는 또다른 기준, ‘부동산 버블’
[아시아경제 조해수 기자] 석유·식품 가격 상승으로 세계 경제에 인플레이션 경고등이 켜진 가운데 부동산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부동산 버블’은 신흥국을 넘어 선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1일 경제성장 속도의 차이가 세계를 나누는 기준이 돼 왔지만 현재는 부동산 버블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세계는 금융위기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선진국-신흥국 간 확연히 다른 회복세를 보였다. 미국, 유럽, 일본 등은 부진한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반면 중국, 인도, 브라질 등은 세계 금융위기가 무색할 정도로 약진했다.
국제금융연합회(IIF)의 필립 서틀 글로벌 경제 리서치 대표는 이를 ‘2-6 세계’로 표현했다. 선진국들의 경제 성장률과 물가 상승률이 2%대에 그친 반면 신흥국의 경우 두 부문에서 6%대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서는 일부 선진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부동산 가격 급등을 설명할 수 없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는 나라에는 중국, 홍콩, 싱가포르,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 이스라엘 등 신흥국 외에도 캐나다, 스웨덴 등 선진국도 포함돼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금융위기 당시 은행권이 타격을 입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스탠리 피셔 이스라엘중앙은행(BOI) 총재는 “세계 금융위기 당시 금융권의 피해가 없었던 국가에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면서 “이들 국가에서는 기준금리 인하 -> 부동산담보대출(모기지) 금리 하락 -> 모기지 수요 증가 -> 부동산 가격 급등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금융위기 당시 다른 나라들도 금리를 낮췄다. 그러나 은행권이 심각한 타격을 입은 나라에서는 이와 같은 연쇄효과가 발생하지 않았다. 은행권들이 대출을 꺼리거나 돈을 빌려줄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 2008년 12월 이후 금리를 사실상 제로(0) 상태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스탠더드앤푸어스(S&P)/케이스-쉴러에 따르면 1월 미 20개 대도시 주택가격은 전년동기 대비 3.1% 떨어졌다. 이는 2006년 고점에 비해 약 30% 하락한 것이다.
반면 캐나다 은행권은 금융위기로 타격을 거의 입지 않았다. 그러나 캐나다중앙은행(BOC)은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1%로 내렸다. 이에 따라 부동산 시장은 과열됐다. 캐나다 부동산협회에 따르면 지난 2월 부동산 가격은 전년동기 대비 약 9% 올랐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비우량 주택담보 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에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융위기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BOI도 2009년 기준금리를 0.5%까지 인하했다. 지난해 이스라엘 부동산 가격은 16.3% 뛰었다.
홍콩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홍콩달러 환율은 달러에 고정(페그)돼 있기 때문에 홍콩 금리는 미국처럼 제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에 따라 홍콩 부동산 가격은 2009년 30%, 지난해 20% 상승했다. 올해 2월까지도 7% 올랐다.
홍콩 금융관리국(HKMA)의 노먼 찬 총재는 최근 “초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듯이 부동산 가격도 마찬가지”라면서 부동산 버블 붕괴를 경고했다.
이들 국가들은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각종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홍콩은 최초 계약금 최소 한도를 30%에서 40%로 올리고 부동산 거래세율도 최대 15%까지 부과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난 3개월 동안 금리를 1%포인트나 올렸다. 현재 이스라엘 금리는 3%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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