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LG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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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서소정 기자] “세계 자동차 시장은 전기차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습니다. 전기 자동차용 배터리 생산을 위한 제1공장 준공에 이어 제2공장, 제3공장이 본격 가동되면 세계 1위 지위를 공고히 하게 될 것입니다.”


6일 충북 오창산업단지 오창테크노파크에서 열린 제1배터리공장 준공식에서 김반석 LG화학 부회장의 인사말을 듣는 구본무 LG회장의 소회는 남달랐다.

이명박 대통령의 우측에 앉아 경청하는 구 회장의 얼굴에는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제1공장 준공으로 LG화학이 연간 10만대의 전기차에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를 갖춘 데 대한 기쁨이 컸지만, 그동안 전기자동차 배터리 사업을 위해 쏟아부은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구 회장은(당시 부회장) 지난 1992년 유럽지역 사업을 점검하기 위해 유럽 출장을 떠났다. 출장중 영국을 들린 구 회장은 영국 원자력연구원에서(AEA)에서 한번 쓰고 버리는 건전지가 아니라 충전을 하면 여러 번 반복해서 사용이 가능한 2차전지를 처음 접하게 됐다.

그는 2차전지가 미래의 새로운 성장사업이 될 수 있다고 보고, 귀국길에 2차전지 샘플을 가져와 당시 계열사였던 럭키금속에 연구하도록 했다.


구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럭키금속은 1992년말 AEA와 ‘리튬전지의 저온 활동성 향상 및 사업화’ 관련한 공동연구개발 협약을 체결하고 2차전지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1996년 럭키금속의 전지 연구조직을 LG화학으로 이전해 연구를 계속 진행했다. 리튬전지가 음극재, 양극재, 전해질 등 화학물질로 구성돼있는 만큼 소재분야 연구능력이 뛰어난 LG화학으로 연구조직을 이전한 것이다.


하지만 성과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97년에 LG화학 연구진들이 소형전지 파일럿 생산을 처음 성공하긴 했지만 대량 양산하기에는 품질이 따라주질 않았고, 일본 선발업체들의 기술경쟁력을 따라잡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면서 2차전지 사업은 위기에 봉착하기 시작했다. 90년대부터 수년간의 투자에도 불구하고 가시적인 성과가 안 나타나자 여기저기서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급기야 2001년 11월 여의도 LG트윈타워 회의실에 구본무 회장과 주요계열사 최고경영진이 2차전지 사업 논의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몇몇 계열사 최고경영진은 "적자를 감수하며 계속 사업을 해야 하나. 다른 세계적 기업들은 전자회사들이 개발하고 있는데 우리는 LG화학이 이 사업을 하는 게 과연 맞느냐"며 LG화학의 전지사업 추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구 회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포기하지 말고 투자와 연구개발에 집중하라. 나는 LG화학이 계속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꼭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다시 시작하라"고 독려했다.


2005년 말, 2차전지 사업이 2000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기록하자 또 사업을 접자는 얘기가 오갔다. 구 회장은 이번에도 ‘2차전지에 미래가 있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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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LG화학은 97년 11월 일본제품보다 뛰어난 세계 최고 용량, 세계 최경량 시제품 양산에 성공했고, 이후 승승장구를 거듭해 2009년 세계 최대 자동차업체인 GM사의 전기자동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단독 공급업체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이제는 연간 10만대에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를 갖춘 2차전지 메이커로 자리매김했다.


LG화학 고위 임원은 “구 회장의 전지사업 육성에 대한 인내와 끈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성공도 없었을 것”이라며 “우리나라가 전기자동차 사업의 중심임을 증명할 수 있도록 앞으로 투자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창(충북)=서소정 기자 s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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