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탈출하자"..피난 시작됐다
[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오주연 기자, 이민아 기자] 피난이 시작됐다. 방사성물질이 도쿄를 비롯해 일본 전역으로 확산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을 떠나려는 피난행렬이 나리타와 하네다ㆍ후쿠시마ㆍ니가타 등 일본 내 국제공항으로 이어져 공항 로비는 표를 사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일본인을 비롯해 한국인ㆍ미국인 등 국적 불문이다.
강진ㆍ지진해일(쓰나미)에 따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일본 내 방사성물질 누출 공포가 확산되는 가운데 17일 0시께 인천공항 입국장에 일본에서 급히 귀국하는 가족ㆍ친지를 마중나온 사람들이 모여있다.
이들의 목적지는 일단 한국이다. 일본과 가까워 유사시에 다시 돌아가기 쉽다는 판단 때문이다. 사태가 이지경에 이르자 미국과 독일ㆍ중국 등 세계 각국도 일제히 자국민의 일본 철수작전에 돌입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당초 방침을 바꿔 비행기 편수를 늘리는 등 피난민 수송작전에 돌입했다.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엔 일본에서 들어오는 입국자들의 방사능 오염 여부를 가리는 '방사능게이트'가 긴급 설치됐다.
짙은 어둠이 깔린 17일 새벽 0시50분. 인천국제공항에 혼슈(本州) 지바현(千葉縣) 나리타(成田)공항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KE8706편이 피난민 150여명을 쏟아냈다. 일종의 특별 수송기다. 일본인 아내를 현지에 남겨둔 채 갓난아기만 데리고 나온 운용운(36ㆍ남)씨는 "방사성물질의 영향이 도쿄(東京)에까지 미쳤다는 보도를 접하자마자 아이를 데리고 귀국할 결심을 했다"면서 "언제 다시 일본으로 갈 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운씨는 또 "상황을 봐가며 일본인 아내도 데리고 올 생각"이라며 "한국에 계신 부모님의 성화로 아이만 먼저 데리고 올 만큼 다급한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같은 비행기로 귀국한 임채정(38ㆍ여)씨는 일본 내 한국 교민 대부분이 한시라도 빨리 일본을 뜨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신문이나 방송은 차분하게만 얘기하고 있어 답답하다"며 "동요할까 우려해서 그런지 '걱정없다'는 말만 계속 한다"고 답답했던 심정을 밝혔다. 임씨는 "원전 사고 초기엔 위험지역이 반경 20km까지라고 하더니 자고나면 30km, 50km로 점점 불어났다"면서 "일본 언론을 못 믿겠다"는 불만도 토로했다. 그는 또 "무조건 안정만 시키려는 일본 뉴스와 한국 뉴스가 완전히 다르더라"며 "일본정부의 속 뜻을 알고 싶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일본인들의 피난처로 여겨지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일본인 입국자 3명을 마중나온 H항공사 가이드 김모씨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한국 장기체류 관련 문의가 속속 들어오고 있다"면서 "일본내에 불안감이 커지면서 일단 위기를 피해 안전한 한국을 찾으려는 것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했다.
중국인 유학생 양신잉씨도 "상황이 너무 혼란스러워 주위 사람들 대부분 다 떠나거나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며 "다들 빨리 귀국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센다이를 탈출한 주승희(53ㆍ여)씨도 "도저히 무서워서 일본에서는 더이상 살 수 없을 것 같다"며 "딸들도 귀국하라고 종용해 돌아갈 날짜를 정해놓지 않고 귀국했다" 고 한숨부터 쉬었다.
국내 항공사들도 피난민들을 위한 발빠른 대응에 나섰다. 우리 교민들이 단 한 명이라도 더 안전하게 고국 땅을 밟도록 힘을 보태기 위해서다. 대한항공은 17일 인천-나리타 노선을 종전 하루 4대에서 7대로, 아시아나항공은 하루 1대에서 2대로 늘렸다. 대한항공의 경우 종전 180여석 규모이던 이 노선의 항공기를 280여석 규모의 대형 항공기로 바꿨다. 두 회사 모두 나리타-인천, 하네다-김포 일본발 편도 노선 항공료를 50% 깎아주는 행사에 돌입했다. 17일 새벽 0시39분에서 2시11분 사이 나리타를 떠나 인천에 도착한 대한항공 KE8704ㆍKE8706ㆍKE8720편 등 3편 모두 긴급 투입된 증편 노선이었다.
서기원 아시아나항공 대리는 "17일 오후 5시에 나리타를 출발해 인천으로 오는 임시편을 편성했다"며 "오는 27일까지는 항공료를 50% 할인해주고 일본 여행을 취소하는 승객들을 위해서는 취소 수수료를 면제해주는 등의 조치도 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의 추가적인 특별기 편성을 포함해 다양한 탑승객 지원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체를 통해 방사성물질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는 걸 막으려는 우리 정부의 비상대응책도 가동되기 시작했다. 17일 새벽 인천공항 출입국 검색대에 일본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의 방사성물질 노출 여부를 검사하는 방사능게이트 2대가 설치된 데 이어 이날 오후 김포공항에도 같은 게이트가 설치된다.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정상회의 때 사용됐던 이들 기기는 극소량의 방사성물질까지 탐지가 가능할 정도로 성능이 우수하다는 게 관리 당국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설명이다.
오주연 기자 moon170@
이민아 기자 ma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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