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밥통 공기업에 칼바람...기본급도 싹둑·후배에 치이고 강퇴당해
[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정년보장이라는 철밥통의 신화를 믿어왔던 공기업 직원들이 떨고 있다.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에 따라 일부 공기업들이 성과가 낮은 간부와 일반직원들을 대상으로 단순히 성과급 차등 지급 차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기본급 삭감은 물론 퇴출제도까지 도입키로 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같은 제도 도입이 노사합의로 이뤄진 곳이 대부분이이어서 저성과자, 무능력자로 낙인찍혀 퇴출될 경우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어지는 상황이다. 말 그대로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게 되는 셈이다.
◆시간만 벌자..연공서열형 연봉제 없다=우선 KOTRA(사장 조환익)는 내년부터 부ㆍ처장(1~2직급) 간부직에 적용해 온 연공주의 연봉등급제를 없애기로 했다. 이에 따라 창사이래 49년간 간부직에 적용해 온 근무 연한에 따른 연봉 등급표가 사라지고, 전년도 평가에 따른 성과급 연봉제가 도입된다. 코트라(KOTRA)는 2001년부터 전 직원에 대한 연봉제를 도입했지만, 연봉 책정에 근무 연한을 반영하는 연봉등급표를 유지했다. KOTRA측은 "그 동안 상위 10%, 하위 20%를 빼고 나머지 70%는 연봉에 큰 차이가 없었다"면서 "이번 개편으로 간부 180여명이 기본연봉 차등인상 제도 대상이 되고 5등급으로 세분화 된다"고 밝혔다.
한국석유공사(사장 강영원)는 연속 2년 저성과자, 무임승차자(Free Rider)로 평가되면 기본 연봉을 대폭 삭감하고 성과 연봉을 아예 지급하지 않으면서 실질적으로 퇴직을 유도하는 '민간기업형 퇴출 및 성과 보상제'를 도입해 호평을 받고 있다. 2년 연속 D등급을 받을 경우, 성과관리 개선 대상자로 선정돼 개선기간 중에는 기본급 50%만 받을 수 있을 뿐 성과급은 전혀 못받게 된다는 얘기다.
대형 공기업 외에 최근 들어 중소규모 공기업, 출연연에서 파격적 제도를 도입한 점이 눈에 띈다.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원장 이준현)은 최저성과자에 대해 성과급은 물론 기본급도 삭감하는 내용의 성과연봉제를 내년부터 시행키로 노사가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최고 성과자와 최저 성과자 간에 기본급에서 2%, 여타 성과급을 합하면 최대 20% 까지 격차가 나게 된다. 우선 호봉제에서는 승진 소요 연수를 기준으로 삼았으나 성과 연봉제에서는 승진 포인트제도를 도입해 승진 최소 연수를 7년이상에서 고(高)성과자는 5년으로 단축했다.
기본급은 업적 성과에 따라 차등(S등급 +1% ~ D등급 -1%)을 두었고 기본 연봉은 직급간 성과에 따라 연봉을 차등 지급하도록 했다. 또한 상위 직급일수록 임금 격차 폭을 확대한 점이 특징이다. 성과급은 최고 성과자와 최저 성과자간 차등 폭을 2배 이상을 했고, 성과 연봉 비중은 총 연봉의 20% 이상으로 정했다.
교통보조비, 중식보조비, 감사수당, 출납수당도 성과연봉으로 통합했다. 또한 직무 난이도에 따른 직무급을 차등지급하고, 기존 직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급여가 낮은 신규 입사자의 급여는 노사 공동으로 개선책을 마련한 뒤 시행키로 했다. 한국석유관리원(이사장 이천호)도 노사 합의를 거쳐 내년부터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성과에 따라 연봉 격차가 최대 20% 이상까지 벌어지는 '직무급 성과연봉제'를 실시키로 했다. 이에 따라 기본연봉과 법정수당 및 각종 제수당, 급여성 복리후생비 등으로 구분돼 있던 기존 임금구조는 기본연봉, 직무급, 법정수당, 성과연봉으로 단순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성과 연봉이 총 연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이상 되도록 설계했다. 성과 연봉은 조직 및 개인업적 평가의 결과에 따라 5등급으로 분류, 최고 등급과 최저 등급 간의 차등폭이 2배 이상, 고성과자와 저성과자간 전체보수 차등폭은 1~3급 간부직의 경우 30%, 4급 이하 직원은 20%이상 까지 벌어지도록 했다.
◆능력없으면 언제라도 퇴출, 물갈이 = 최근 공기업 인사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과감한 퇴출과 발탁 인사다. 이미 한국전력(사장 김쌍수)은 올해 인사에서 실적 평가(하위 30%), 징계 등을 반영한 청렴도 평가를 통해 32명을 '지점장(2급) 보직 부적격자'로 정해 지점장 승진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또 지점장에 지금껏 가장 많은 18명의 3급을 발령했다.
만년적자를 기록중안 대한석탄공사(사장 이강후)는 최근 인사에서 성과가 낮은 인력의 퇴출과 4급의 2급 자리 기용 등 발탁인사를 했다. 본사 간부직 중 기획조정실장, 생산안전팀장 등 1급 4자리 중 2자리에 2급 직원이 발탁됐다. 경쟁에서 탈락한 1급 간부 3명은 2급 직위 및 팀원으로 발령내는 수모를 감내해야만 했다.
홍보실장(2급)의 경우, 두 단계나 낮은 4급 팀원을 파격적으로 발탁했다. 석탄공사 관계자는 "직무성과와 업무 역량이 낮은 저성과자에 대한 특별관리 방안도 마련해 내년 1월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저성과자(직무능력 향상 대상자)에 대해서는 일반직 전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되며 인사평가 결과 하위 5% 부진자에 대해 역량 강화 등 능력회복 기회를 주고 미흡할 경우에는 퇴출시키기로 했다.
직무에 따른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석유관리원도 최근 1~3급 총 76명의 직원을 대상으로 부서장 직위에 대해 공모를 실시해 경영관리처장, 검사관리처장, 제주지사장 등 1급 자리에 2급 직원을 선발했다. 대구경북지사장에는 3급 직원을 전격 발탁했다. 길거리 유사석유가 만연한 대구경북지역에 젊은 지사장을 기용해 변모를 꾀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기존 2급 직원들의 자리였던 팀장직에도 능력을 인정받은 3급 과장 7명이 대거 선발됐다. 경쟁에서 탈락한 간부들은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업무역량 강화에 노력해야 하며, 지속적으로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에는 2진 아웃제도 등을 통해 퇴출될 예정이다.
이와 달리 기관통합을 통해 상대적으로 낮은 연봉을 받았다가 오히려 연봉이 오른 곳도 있다. 지난해 5개 기관이 통합해 출범한 한국산업기술진흥원(원장 김용근)은 최근 노사합의로 연봉 5000만원 미만 직원에 대해서는 경력을 재산정했다. 그 결과 15년차 직원의 경우 연봉이 최대 1600만원, 대략 10여년의 격차에 해당되던 것이 2, 3년여차인 600만원으로 좁혀졌다. 3000만원과 4600만원 받던 동일 경력 직원 중 3000만원 직원이 4000만원까지 오른 셈이다.
한 공기업 기관장은 "성과연봉제는 이미 정부가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통해 강력하게 주문하고 있는 데다 노조에서도 실적과 능력에 따른 신상필벌의 대세를 거스르기 어렵다고 판단해 보다 적극적이고 선도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 공기업 노조간부는 이에 대해 "공기업은 설립목적과 기관 특성상 성과와 능력을 지표화하기 어려운 실정" 이라며 "노사 모두 인정할만한 공정하고 합리적인 성과평가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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