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형은행 매달 비밀모임 갖는다"
NYT, 골드만 등 9개사가 파생상품청산소 장악
[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23조달러 규모의 세계 최대 자산 수탁기관인 BNY멜론(뉴욕멜론은행)은 최근 파생상품 시장 진출을 모색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금융위기 이후 세워진 파생상품청산소(클리어링하우스)를 주도하고 있는 경쟁 대형은행들이 조직적으로 방해했다는 것이 BNY멜론측 주장이다.
올해 초부터 BNY멜론은 파생상품청산소 등록을 추진해왔으나 4곳 중 3곳에서 BNY멜론의 파생상품 부문 자산이 너무 적어 전체 시장에 너무 큰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불가 의사를 밝혔다. 파생상품시장 진입을 위해 설립된 BNY멜론클리어링의 산자이 칸남바디 대표는 “이런 말도 안되는 조치는 파생상품시장을 장악한 기존 대형은행들의 견제”라고 주장했다.
11일 뉴욕타임스(NYT)는 파생상품 거래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설립된 청산소가 월가 대형 은행들의 담합을 위한 제도로 변질됐다고 보도했다. 금융시장의 세이프가드라는 본연의 역할 대신 대형은행들의 파생상품시장 지배권 확립과 독점이익 보호에 악용되고 있다는 것.
NYT는 “매달 셋째주 수요일 월가의 엘리트 아홉명이 맨해튼 시내 중심가에서 비밀 모임을 갖고 있으며 이들의 정체와 회의 내용은 철저히 극비에 부쳐진다”고 고발했다. 이 모임을 통해 골드만삭스, JP모건 등 월가의 대형은행들은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는 파생상품시장 이권을 지키기 위해 경쟁업체의 진입을 막고 시장 가격정보의 완전 공개를 막으려 한다고 NYT는 지적했다.
NYT의 취재 결과 청산소들은 위원회 구성원을 밝히지 않았지만 익명의 ICE트러스트 관계자에 따르면 ICE 위원회에 참여하는 은행들은 JP모건체이스, 모건스탠리, 도이체방크, UBS, 바클레이즈, 크레디트스위스, 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그룹 등 9개였다. 이들 은행은 확인을 거부했지만 일부는 청산소 운영을 돕기 위한 전문가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 정부는 전체 금융시스템을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을 우려해 규제 강화를 추진해 왔다. 특히 파생상품인 신용부도스왑(CDS)은 ‘국제금융시장의 시한폭탄’으로 불릴 정도로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CDS는 채권을 발행한 기업이나 국가가 부도가 나더라도 원금을 상환할 수 있도록 보장한 금융상품이다. CDS 거래는 채권 브로커리지를 통해 장외에서 비공개에 이뤄졌다. 계약 체결 뒤 자유롭게 제3자에 되팔 수 있어 거래가 거듭되는 동안 발행자와 인수자가 불투명해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서브프라임 모지지 부실화로 기업 부도가 늘면서 막대한 손실이 CDS를 통해 금융사들 사이에 꼬리를 물고 이전됐다. 월가의 대형은행들에 CDS를 판매했던 세계 최대 보험사 AIG는 막대한 부실을 떠안고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다.
금융위기 진화에 나선 미국 등 각국 정부는 파생상품 리스크를 차단하기 위해 청산소를 도입했다. 파생상품 장외거래를 당국의 규제를 받는 거래소로 끌어들여 금융시스템 전체로 신용불안이 확산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온라인 거래소 인터컨티넨털익스체인지(ICE)는 연방준비제도(Fed)와 증권거래소(SEC)의 승인을 거쳐 중앙청산소 ‘ICE트러스트’를 설립했고 시카고상업거래소(CME)와 뉴욕증권거래소(NYSE) 등도 청산소 설립에 나섰다.
은행 파생상품 거래 규제를 위한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안에 따라 현재 대부분의 파생상품은 이들 청산소를 통해 거래되고 있다. 문제는 이들 청산소에 미치는 월가 대형은행들의 영향력이 여전히 크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의 지시에 따라 청산소 설립에 참여한 월가의 대형은행들은 운영위원회를 통해 청산소 운영에 개입하고 있으며 이들은 보다 투명한 가격공개를 위한 전자거래 추진안을 부결시키는 등 이권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고 NYT는 밝혔다.
이들 대형은행들이 파생상품 시장에 집착하는 이유는 오늘날 파생상품만큼 수익성 높은 금융상품은 없기 때문이라고 NYT는 설명했다. 월가 금융권의 파생상품 거래 규모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전직 트레이더들의 증언에 따르면 2500만달러 규모의 CDS 거래를 통해 은행이 가져가는 이익은 2만5000달러 정도였다. 이들 트레이더들은 하루에 수백만 달러의 거래를 처리하며 CDS는 수많은 파생상품 중 하나에 불과하다. NYT는 파생상품 거래를 둘러싼 이같은 불투명성이 바로 대형은행들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도록 하는 핵심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미 법무부는 최근 이같은 은행들의 담합행위를 면밀히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대변인은 산하 반독점법 관련부서가 “파생상품 청산·거래·정보제공업체들 간의 담합·공모 가능성에 대해 내사를 벌이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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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지금 파생시장 상황이 지난 1990년대 나스닥(NASDAQ) 증시와 여러 모로 닮았다고 말하고 있다. 당시 미 법무부는 나스닥 증시 설립업체들 간에 이권 보호를 위한 공모가 있었음을 밝혀냈고 전면적인 시장구조조정과 전자거래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나스닥 주가는 20분의 1 수준으로 급락했다.
당시 나스닥 수사에 참여했던 로버트 라이턴 전 법무부 차관보는 “일부 지배업체들이 의도적으로 경쟁업체의 참여를 배제하기 위해 시장 진입장벽을 높이는 경우 이는 반독점법 위반으로 불법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면서 “파생상품 거래의 역사는 매우 협소한 시장참여자들 가운데서 이루어져 왔으며 이같은 관행은 쉽게 깨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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